[데스크의 눈]홀아버지에게 용기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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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최근 이색모임이 하나 발족했다.

이름하여 '홀로 서는 아버지의 모임' .이혼이나 별거로 홀로 된 아버지들이 아이 키우며 집안일 돌보랴, 직장생활 하랴 어려움을 겪어도 툭 터놓고 이야기할 데가 없어 모임을 만들게 됐다고 한다.

비록 배우자가 없다고는 해도 자신의 자녀를 자신이 돌보는 것이 뭐 그리 대수로운가 하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작금 우리 사회를 들여다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통계청에 따르면 66년 39만2천가구이던 편부모 가구는 20년만에 94만1천9백가구로 두배가 넘게 늘었다.

이 과정에서 편모 가구의 비중은 91.1%에서 82.7%로 줄어들고 있으나 편부 가구의 비중은 8.9%에서 17.3%로 크게 증가하고 있다.

이 가운데 특히 힘든 가정은 18세 미만의 자녀를 둔 가정이다.

보건복지부가 집계한 지난해 18세 미만의 자녀를 둔 부자 (父子)가정은 1만3천5백95가구. 95년보다 1천5백60가구가 더 늘어났다.

이혼.사별로 인해 부모중 한쪽이 자녀를 양육하는 것은 현대사회에서 피할 수 없는 일인지도 모른다.

문제는 '아내는 가출중' 인 가정이 늘어나는 데 있다.

국제통화기금 (IMF) 한파 이후 실직한 가장과 자식을 남겨두고 떠나가는 주부들이 많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강원도만 해도 지난해 10~12월에 가출한 사람중 주부가 43.4%나 됐으며 그중 절반정도가 12월에 집을 나갔다고 한다.

올 들어서만도 1월 한달간 가출한 이들의 55%가 주부라고 하니 가족을 버리고 가는 주부들의 숫자는 경기 불황의 늪이 깊어갈수록 더욱 늘어만 가는 셈이다.

신고된 숫자가 이 정도면 숨어 있는 숫자는 또 얼마나 많을 것인가.

여성단체 관계자들은 "가출주부가 수만명에 이를 것" 으로 추산할 정도다.

"오죽하면 자식을 버리고 떠나겠느냐" 고 항변할지 모른다.

가출한 주부 가운데는 실직한 남편과 재취업을 놓고 말다툼을 하다가 남편에게 손찌검을 당하거나 정신적 학대에 견디지 못한 이들도 있을 것이다.

'혼자몸이 되면 돈벌기가 쉬울테니…' 하며 마음속으로 훗날을 기약하고 떠나는 주부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눈앞에 닥쳐오는 궁핍한 생활과 마음의 고통이 싫어 '자식도 남편도 다 싫다.

나만이라도' 하는 이기적인 생각에서 도피를 감행한 이는 혹여 없었을까. 주부가 떠난 뒷자리에 어린 자녀와 함께 남겨진 홀아버지가 있다.

젖먹이 신세를 겨우 벗어난 코흘리개들의 양육까지 떠맡아야 하는 홀아버지들의 짐은 너무나 버겁기만 하다.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셔서 세살.다섯살 난 꼬마들을 잠시라도 맡길 곳이 없어 일자리를 찾아 나설 수도 없는 신세" 라는 한 홀아버지의 한탄은 차라리 통곡에 가깝다.

보육원 등 어린이들을 돌봐주는 사회복지기관에는 생활고를 이기지 못한 홀아버지들의 아이를 돌봐줄 수 없느냐는 전화가 끊이지 않고 있다 한다.

이제라도 홀아버지가 자녀 돌보기를 포기하지 않도록 사회가 관심을 가져야만 한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집 없는 부자 (父子)가 단기적이나마 기댈 수 있는 보호시설도, 자립을 도와주는 곳도 없다.

부자 (父子)가정은 임대주택 알선 지침에서도 빠져 있을 정도다.

6.25전쟁으로 양산된 모자가정에 우리 사회가 관심을 가졌던 것처럼 현대 산업사회의 틈바구니에서 어쩔 수 없이 탄생하는 부자가정을 위해서도 사회적인 대책이 마련돼야만 한다.

주변의 이웃들도 이들이 절망에 빠지지 않도록 따스한 손길로 일으켜 세워주자. 아이들이 꿈꾸고 소망하는 것은 부귀영화가 아니다.

단지 부모와 함께 생활하는 것이다.

보육원에 보내진 어린 아이들은 '부모가 왜 나를 버렸을까' 고민하던 끝에 자신이 큰 잘못을 저지른 탓일 것으로 여겨 평생 죄책감에 시달린다고 한다.

홀아버지들이 자녀들과 함께 꿋꿋이 살아갈 수 있도록 우리 모두 용기를 주자. 홀아버지 파이팅!

홍은희〈생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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