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국민을 믿게 해야 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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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소위 북풍사건은 조사가 진행될수록 뭐하나 속시원히 밝혀지는 건 없고 의혹만 중중첩첩으로 짙어만 가는 느낌이다.

권영해 (權寧海) 전안기부장은 무슨 깊은 사연이 있길래 깊이 5㎝가 되도록 자기 배를 그었는가.

검찰수사과정에서는 어떤 일이 있었는가.

소위 이대성 (李大成) 파일엔 과연 무슨 엄청난 내용이 있길래 공개를 못하는가.

흑금성은 누구며 누구를 위해 무슨 일을 해왔는가.

왜 갑자기 여당은 덮자고 하고 야당은 공개를 주장하는가…. 일반인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풀 수 없는 수많은 의혹과 수수께끼가 북풍사건에 도사리고 있다.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조작인지, 여당 말이 맞는지 야당 말이 맞는지, 검찰과 안기부 새 간부들의 말은 다 믿을만 한지도 알 수 없는 지경이 되고 있다.

국가최고정보기관은 물론 여야 정치권까지 관련성이 있는, 문자 그대로 국기 (國基) 와도 관련되는 이런 중대한 사건을 맞고도 다수 국민이 영문을 모른 채 바보 (?)가 되는 이런 상황은 결코 정상이라고 보기 어렵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사건의 조사과정과 조사 결과를 국민이 믿을 수 있도록 투명성.객관성.공정성의 확보가 시급하다고 본다.

가령 이대성파일엔 새 집권측에도 불리한 내용이 있다고 들린다.

여당측이 이를 덮자고만 한다면 의혹이 풀릴 수 없다.

이미 그 내용의 상당 부분이 언론에 유출됐고 국회 정보위원을 포함한 다수 정치인들이 내용을 다 알고 있다.

더 이상 비밀유지가 될는지도 의문이다.

그렇다면 파일의 공개도 검토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번 사태로 말미암아 안기부의 대외정보기능은 거의 마비상태에 빠지고 대부분 요원들이 일손을 놓고 있다고 한다.

국가중추기관의 하나인 정보기관의 이런 상태는 국익을 위해서도 시급히 정상화돼야 한다.

미뤄지고 있는 안기부 중.하위직 인사도 빨리 단행하고 전문적인 순수 정보요원들은 철저히 보호하는 조치를 취해야 한다.

상층부의 정치적 임명직을 제외한 실무인사에서는 더 이상 정치색이나 지역성을 따져서는 안될 것이다.

또 한가지 시급히 할 일은 안기부의 기강을 잡고, 사태가 이 지경이 되도록 관리와 보안유지의 부실과 허점을 초래한 책임소재를 규명하는 것이다.

문서유출이 벌써 몇번째인가.

지금 이 시간에도 또다른 문서뭉치를 몰래 챙겨나오는 요원은 없을 것인가.

상황이 중대한만큼 당국은 정치적 유.불리 (有.不利) 를 떠나 국가적 차원에서 이런 몇가지 조치를 빨리 과감하게 취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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