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텃밭 가꾸기로 생태도시 만들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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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우리집 주변에는 다양한 종류의 나무와 꽃이 자라고 있다. 벚나무.소나무.감나무.라일락.철쭉.개나리.백합 등. 나는 처음엔 그냥 저절로 자라는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게 그렇지 않았다. 가끔 산책 삼아 나가 보면 아주머니나 할머니들이 계속 손을 봐주고 있었다. 흙도 뒤집어주고, 비료도 주고, 잡초도 뽑아줬다. 이런 정성이 나무와 꽃을 자라게 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돈이 되는 것도 아니고 무슨 보상이 따르는 것도 아닌데 왜 그런 노력을 기울이는 것일까? 그건 아마도 꽃이나 나무와 가까이하고 싶은 인간의 심성때문일 것이다. 박완서의 소설에도 평생 소원이 자그마한 텃밭을 가꾸는 것인 한 할머니가 등장한다.

내가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는가. 생태도시란 거창한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다. 자기 소유의 자그마한 텃밭을 가꾸고 거기에서 나오는 작물로 자급자족하는 도시가 곧 생태도시가 아닐까? 물론 자신이 먹을 것이니 화학비료는 쓰지 않을 것이고. 무슨 꿈 같은 소리냐고?

그러나 그런 곳이 있다. 쿠바의 아바나가 바로 그런 곳이다. 면적은 서울시와 비슷하지만 인구는 약 200만명인 이 도시는 도시농장을 주요 산업으로 육성하면서 세계의 모범이 되고 있다. 이곳에 도시농장을 짓겠다는 발상이나, 빈 땅은 무조건 텃밭을 가꾸도록 법을 제정한다거나, 화학비료는 절대 쓰지 못하게 하거나, 도시 곳곳에 직거래 장터를 만들어 소비자들이 손쉽게 먹거리를 살 수 있게 하는 과정을 직접 보니 부럽다기보다는 '우리라고 못할쏘냐'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그동안 우리는 무엇이든 서구나 일본과 같은 소위 선진국가를 모범으로 하는 버릇이 남아 생태도시조차 그들의 것을 따르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나 각 나라나 도시가 처한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일방적인 모방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녹색교통을 실현한다고 광장을 만들어 교통을 더욱 혼잡스럽게 하고, 버스중앙차로제를 만들겠다고 도로 곳곳을 공사장으로 만들어 놓은 현실을 보라.

그런 면에서 아바나는 본받을 만하다. 나는 아바나를 보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지금 당장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거창한 생태계획이 아니다. 사람은 자연과 늘 접할 수 있어야 하며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를 고민해 봐야 한다. 국가경쟁력 운운하며 사람을 자본의 쳇바퀴 속으로 몰고가는 대신에 말이다. 막말로 돈이라는 것도 몸과 마음이 건강해야 벌리는 것 아닌가.

서울시에 놀리는 땅을 텃밭으로 만들고 그곳에 작물을 재배하거나 나무나 꽃을 심자. 이를 위해 신청자를 받아 그곳에서 나온 작물은 자급자족을 원칙으로 하되 잉여분은 직거래 장터에서의 판매를 허용하자. 나는 이런 정책이 그렇게 힘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고용 창출이나 환경가치 측면에서 이보다 더 좋은 정책이 어디 있겠는가.

나는 텃밭을 생태도시의 출발로 삼고자 한다. 왜냐하면 아무리 벌금을 매기겠다고 겁을 줘도 상추나 무 등 끊임없이 작물을 재배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그분들이 갖고 있는 심성이 바로 생태도시의 출발이라고 생각한다. 서구의 멋진 모델을 배우러 가고 그것을 한국에 적용하려고 노력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우선 땅을 소중히 여겼던 우리 옛 선인들의 마음을 되새기고 직접 흙과 작물을 만지고 재배하는 게 더욱 중요한 것이다. 정부는 텃밭에 험악한 문구나 써놓지 말고 어떻게 하면 도심에서 텃밭을 가꿀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한다. 우리네 아줌마.할머니들은 누가 시키지 않는데도 그런 일을 자진해 하시는데 제발 방해나 놓지 말았으면 좋겠다.

최지훈 서울대 환경대학원 박사과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