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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 도둑질 부끄럽지도 않은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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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노자는 '도덕경'에서 '공(功)이 이루어지고 나면 그 공의 주인공이 되려 하지 마라. 대저 공에 오로지 몸을 담지 않으면, 그 공이 네 곁을 떠나지 않게 된다'(功成而弗居, 夫唯弗居, 是以不去 .제2장)라고 하면서 '공이 이루어지면 몸을 뒤로 물리는 것이 하늘의 도'(功遂身退, 天之道 .제9장)라는 말도 했다. 공에 거하지 않는 단계도 어려운데 노자는 일의 성취에서 몸을 뒤로 물리라고 권한다. 노자 특유의 무위자연(無爲自然)적 관점이 잘 배어 나오는 말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공을 이루고 몸을 빼기는커녕 공을 세우는 데 조금이라도 기여한 사람들을 쏙 빼고 모두 자신의 공으로 버젓이 내세우는 사람이 허다하다. 노자가 기가 막힐 일이다. 하나를 했는데 열을 했다고 내세우는 사람이 활개치는 세상이다. 열을 해도 하나를 했다고 겸양을 떠는 사람은 이제 바보 취급받는 세상이다.

예전이나 요즘이나 공이 이루어지려면 여러 사람의 힘이 필요하다. 독불장군으로 혼자서 일의 전 과정을 해내는 완벽주의자는 창작의 열기 속에 사는 작곡가와 같은 몇몇 전업 작가에게서나 가능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조각이나 건축 작품 같은 창작품의 경우도 보이지 않는 많은 2류, 3류 인생들의 뒷바라지 노력이 쌓여야 완성품으로 세상에 나올 수 있는 것을 보면 인간이 하는 일이 100% 순수하게 1인의 공력으로 되는 일이 몇이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어떤 일이 이루어지는데 조금이라도 기여한 사람은 이름을 밝혀주고 감사의 말을 덧붙이는 것이 정도다. 21세기는 윤리의 시대요, 유리알 같이 투명한 사회여야 한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이런 지적 결백과 정직성에서 서구사회에 아직도 한참 뒤떨어져 있다. 자신이 한 것을 자신이 한 것으로 내세워야지, 심지어는 조직에서의 높은 자리를 활용해 명령으로 부하직원을 시켜 작성한 것을 버젓이 자기 것으로 둔갑시켜 기고하는 입술로 글을 쓰는 고위직이 허다하다. 중앙 일간지도 그렇지만 전문신문에서는 이런 현상이 더욱 두드러져 보인다.

대학원의 학위논문을 대필시키는가 하면, 타인의 손을 빌려 쓴 저작들, 논문에 상당히 기여한 사람들을 숨기고 자신의 이름만 거는 행위 등 바꾸기 행위가 우리 사회에 만연돼 있다. 이것은 길목을 지키는 비겁한 산적들이나 하는 짓이다. 입신양명(立身揚名)도 자기 힘으로 해야 한다. 딴 사람의 힘을 빌려 자기 것이라는 허명을 떨치고도 부끄러운 줄을 모른다. 외국의 저작을 보면 누구누구에게 감사하다는 말이 몇 페이지고 가는 경우도 많다. 너무 시시콜콜한 기여에도 감사의 표현을 붙이는 데 인색하지 않다. 외국의 논문을 보면 세계적인 명성을 누리고 있는 교수라도 그 기여도에 따라 석사과정의 학생들 뒤에 제4 저자로 밀려나 표기된 경우가 허다하다. 자기의 성취가 아닌 것은 아닌 것으로 지적으로 결백해야 한다. 타인의 공을 인정하고 감사를 표시해야 한다. 그래야만 사회에 창의적인 생각이 넘쳐날 수 있다.

이상명 연세대 21세기건설연구실 수석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