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풍 미스터리]'이대성 파일' 어디까지 진짜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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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이대성 (李大成) 전 안기부 해외조사실장이 여권에 전달한 '북풍 문건' 이 일파만파를 일으키고 있다.

李전실장이 오랫동안 알고 지냈다는 정대철 (鄭大哲) 국민회의부총재에게 전한 이 문건은 누가 작성했고, 내용은 진실한 것인지, 다른 부분이 더 있는지, 무슨 이유로 국민회의측에 전달됐고, 왜 언론에 사전 공개되게 됐는지 등 모두가 의문투성이다. 일단 李실장이 검찰조사에 응하기에 앞서 집권측의 아킬레스건을 건드려 수습하려 했다는 관측이 유력하다.

문건철에 옛여권 관련부분이나 안기부 대북 (對北) 공작을 넘어서서 김대중대통령과 국민회의에 매우 불리한 내용이 상당수 포함됐다는 전언도 있다.

일부 공개된 문건에는 金대통령의 측근이 베이징 (北京)에서 북측 관계자와 접촉했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정보관련 전문가들은 李실장측이 수사방향을 호도하거나 여권압박용으로 이 문건철을 넘겼을 것으로 해석한다.

현재까지 언론에 공개된 것중에 여권이 심각한 타격을 받을 만한 내용이 있는 것은 아니다.

대선과정에서 3당후보 모두 북측과 접촉한 흔적이 있는 것으로 드러나 일반인들을 어지럽게 만들고 있는 상태다.

그러나 문제는 계속 의문을 증폭시키다가 갑자기 어떤 경로로 문건 전모가 드러나고, 여기에 제2.제3문건이 나올 가능성이 남아 있다는데 있다.

그럴 경우 폭발력은 대단할 것이다.

정치권에 미칠 파장은 말할 것도 없고 남북관계에서도 자칫 돌이킬 수 없는 패착이 될 수 있다.

정보관련 전문가들이 북풍공작사건의 수사가 엉뚱한 방향으로 번질까를 우려하는 것도 이런 때문이다.

물론 이 문건에는 정보차원.첩보차원.확인되지 않은 사실들이 뒤섞여 있다.

金대통령도 "내용중엔 한심한 것도 많고 터무니없는 내용도 많았다" 고 말했다.

그러나 정보수집 차원에서 이뤄진 여러 사실들이 드러나면 정보채널에 혼란이 발생할 것이고 이미 그런 징후가 나타나고 있다.

한편 李실장이 국민회의에 넘긴 문건은 어떤 성격의 것일까. 우선 李실장이 해외조사실 예하의 여러 팀으로부터 보고받은 문서들을 서랍에 보관하고 있다가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그대로 갖고 있던 것이라는 관측이 있다.

이 설명은 설득력이 약해 보인다.

李실장 관할 부서가 아닌 다른 실 (室) 의 문서도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일례로 북한 식량문제 보고서는 해외조사실이 아니라 대북전략실에서 작성된 것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또한 李실장이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해외조사실 팀들을 동원해 새로 작성한 것이 아닌가 하는 관측이 있다.

그러나 이 관측은 정보공작부서의 정보차단 원칙을 모르기 때문에 나오는 얘기다.

해외조사실 산하 공작팀들은 바로 옆의 팀이 무슨 사업을 하는지 알 수 없도록 돼있고 직속 상부인 처장 - 단장 - 실장으로 보고되고 만다.

따라서 안기부 고위 간부들이 모여 대처방안을 논의하고 의도된 목적을 갖고 선별된 문건을 여권에 전달했을 가능성을 주목할 수밖에 없다.

안기부 상층부의 판단에 따라 정치공작 관련문서를 파기하는 과정에서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최종적으로 남겨놓은 것이 아닐까 하는 것이다.

그 전모는 문건 전체가 공개돼야 알 수 있을 것이다.

문건 내용을 일일이 확인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조사와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문건내용의 사실 여부가 드러난다 하더라도 일정기간이 지난 후 모호하게 처리될 가능성이 크다.

안기부 한 관계자는 문서공개 파문이 확산되고 있는 것과 관련, "이번 사태가 안기부 고위 관계자들의 조직적 저항으로 비쳐지고 있어 곤혹스럽다" 며 "앞으로의 파장이 어디까지 미칠지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고 말해 안기부 내부에서조차 혼란이 일어나고 있음을 확인해주고 있다.

정창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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