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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내달 새외환법 따른 한국계 은행 움직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4면

외환거래를 전면자유화하는 일본의 새로운 외환관리법이 다음달 1일부터 시행됨에 따라 도쿄에 진출한 한국계 은행들이 발빠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신한은행등 주요 은행들은 외환거래의 전면 자유화에 대비, ▶재일동포 사업가▶거래관계가 있었던 일본인 큰손들에게 일제히 편지를 발송하거나 방문 공세를 펴고 있다.

1945년 패전 직후 제정된 외환관리법은 국내 산업자금 조성을 위해 외화의 해외 유출을 엄격히 통제해 왔다.

이번 개정안은 무역흑자로 외화가 흘러넘침에 따라 일본인들이 해외에서 마음대로 재테크를 할 수 있도록 물꼬를 터주었다.

이에 따라 일본인들은 금리를 더 얹어주는 외국 금융기관에 엔화 표시 예금을 들거나 해외 직접투자도 자유롭게 할 수 있다.

일 금융전문가들은 외환거래 자유화로 향후 1년동안 일본의 개인금융자산 1천2백조엔 가운데 1백조엔 (약 1천2백조원) 이 해외로 흘러나갈 것이라고 추산한다.

한국계 은행들이 제시하고 있는 엔화 표시 1년짜리 정기예금의 금리는 연 2~2.5% 수준. 신용등급이 낮은 은행들은 연 2.7%까지 제시하고 있다.

시티은행등 미.유럽계 은행들이 평균 연 1%, 일 금융기관의 1년 정기예금 금리가 연 0.75%인 점을 감안하면 월등히 높은 수준이다.

한국계 은행의 한 관계자는 "당장 외화가 부족해 연 14%의 벌칙 금리까지 물고 있는 판에 엔화 자금이 들어오기만 하면 가뭄 속의 단비나 다름없다" 고 말했다.

한국계 은행들은 재일동포 자금을 중심으로 향후 1년동안 대략 3조엔 (약 36조원) 의 엄청난 돈이 흘러들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는 곧 2백40억달러에 해당하는 외화다.

한국 정부가 외화 긴급 조달을 위해 외평채 (外平債) 를 발행하지 않아도 될 규모인 것이다.

그러나 비관론도 만만찮다.

일 노무라증권 측은 "일본 국내의 자금은 고금리보다 안정성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며 "외환위기를 겪는 나라보다 구미계 은행 쪽으로 자금이 몰릴 것" 이라고 전망했다.

또 일본의 외환거래가 자유화된 반면, 한국쪽의 관련 규정이 개정되지 않아 재일교포들의 예금 이자에 대한 이중 (二重) 과세가 불가피한 실정이다.

재일동포 자금 유치에 걸림돌이 되는 뜻밖의 요인이다.

더욱이 한국계 은행의 창구 관계자는 "재일동포들의 주력 사업 무대인 파친코 유기장이나 부동산 경기가 최악이어서 오히려 한국에 묻어둔 자금을 담보로 도쿄에서 신규 대출을 해달라는 문의가 더 많은 실정" 이라고 현장 분위기를 전했다.

도쿄 = 이철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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