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산하기관 사장등 고위층 개혁진용으로 교체임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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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경제부처 장.차관과 1급 간부인사가 지난 주말로 마무리되면서 공기업과 정부 산하단체가 '인사 태풍의 눈' 으로 떠오르고 있다.

공기업 인사는 원래 정치 바람을 많이 타는데다 이번에는 정권교체까지 겹쳐 '과거 사람' 들에 대한 대대적인 물갈이가 예상되기 때문이다.

"경영을 못한 공기업 사장은 임기와 관계없이 교체할 것" 이라는 박태영 (朴泰榮) 산업자원부 장관의 공언도 이런 분위기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따라서 17일 포철 주총에서 김만제 (金滿堤) 회장이 퇴임하는 것을 신호탄으로 공기업 고위층 인사가 본격화할 전망이다.

청와대에선 '낙하산 인사' 는 없다고 거듭 천명하고 있지만 공기업이나 정부 산하기관에서는 액면 그대로 믿지 않는 분위기다.

특히 대선 과정에서 공이 많은 사람 등이 전문성과 관계없이 중용되는 구습 (舊習) 이 가실 수 있을지에 대해선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새 정부의 공기업 경영진 인사에서는 개혁을 얼마나 과감하게 추진할 수 있느냐가 주요 기준이 될 것으로 보인다.

공기업이나 정부 산하단체를 더이상 정부가 모두 끌어안고 가는 게 불가능해졌기 때문이다.

민영화나 통폐합이 불가피해졌다는 얘기다.

따라서 이번에는 민영화.통폐합으로 가기 전에 공기업들이 '홀로서기' 를 할 수 있도록 강도높은 자구노력과 내부개혁을 이뤄낼 수 있는 사람을 경영진으로 앉힐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런 기준에서 보면 주택공사.석탄공사.공항공단.송유관공사.관광공사.광업진흥공사.농수산물유통공사 등 경력상 정치적 색깔이 짙은 공기업 사장이 물갈이대상 '0순위' 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들중 일부는 이미 사의를 표명했다.

경영평가 점수가 하위권인 공기업 사장도 좌불안석 (坐不安席) 일 수밖에 없다.

민간전문가들로 구성된 공기업 경영평가단이 매긴 점수가 유일한 '객관적' 잣대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평가에서 꼴지를 한 도로공사나 만년 하위권인 수자원공사 등이 이 범주에 든다.

현재 이 두 공사의 사장은 옛 민주계 출신. 반면 한국통신.한국중공업.가스공사.담배인삼공사 등 이른바 '4대 공기업' 은 인사 회오리에서 한발짝 떨어져 있을 것이란 예상이 지배적이다.

이들 공기업은 경영혁신을 위해 지난해 12월 관련법까지 고친 뒤 공채를 통해 사장을 뽑았기 때문에 정부 마음대로 갈아치우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부가 공기업의 민영화를 앞당긴다는 방침이어서 이들 경영진의 조기퇴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특히 이계철 (李啓徹) 한국통신 사장은 PCS 선정당시 라인에 있었다는 점 때문에 퇴진을 점치는 시각도 많다.

지난해 8월 토지공사 부사장에서 자체 승진한 김윤기 (金允起) 사장의 경우 유임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과거만큼은 아니더라도 정치권의 논공행상 (論功行賞) 도 끼어들 것으로 보인다.

벌써부터 정치권에선 김종필 (金鍾必) 총리의 측근인 조부영 (趙富英) 전의원이나 국민회의의 지원을 받는 고재일 (高在一) 전 건설부장관이 '한자리 할 것' 이란 소문이 파다하다.

한편 대대적인 통폐합이 예고되고 있는 국책연구기관들도 이번 인사태풍의 예외는 아닐 것으로 보인다.

국책연구기관은 성격상 '친 (親)' 정부적일 수밖에 없는데 정권이 바뀌었으니 새 정부의 입맛에 맞는 사람을 골라 쓸 게 아니냐는 것이다.

박영수·정경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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