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원 칼럼]외자도입의 조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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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우리 경제가 어렵게 된 것은 국제사회의 신인도 (confidence) 를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그러면 우리 경제는 지금 어느정도까지 국제적 신인도를 회복했다고 볼 수 있을까. 국제신용평가회사들의 판단에 따르면 아직 멀었다고 할 수밖에 없다.

필자의 생각도 마찬가지다.

지난 1월말 미국의 주요 은행이 주최한 투자전문가들의 회의에서 한국경제의 미래전망에 대해 설명하는 기회가 있었는데 참가자들의 일반적인 반응은 한국의 새 리더십이 출발은 잘 했지만 구체적인 행동은 기다려 봐야 겠다는 것이었다.

지난 3월초에는 하버드대 아시아센터 창립 국제회의에서 한국의 미래에 대한 발표를 했는데 이번 회의에서 나타난 청중의 반응은 조금 더 낙관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많았다.

필자는 한국이 구조조정을 충실하게 할 것이라는 점과, 그 결과로 경제가 더욱 견실해질 뿐만 아니라 정치도 더욱 민주화될 것이라는 점을 나름대로 논리를 세워 강조했다.

마침 다른 패널토론에 나온 카터 에커드 한국연구소장도 한국의 미래에 대해 매우 낙관적인 발언을 했다.

그리고 참가자들 대부분은 공개적인 모임에서는 한국에 대해 긍정적이고 낙관적인 발언을 했다.

특히 회의 참가자들은 한국을 인도네시아와 비교하면서 한국 국민의 단합과 정치적 민주주의, 그리고 새로운 리더십의 자세 등에 대해 매우 긍정적인 발언들을 했다.

그런데 공개적인 모임을 떠나 사사로운 자리에서는 사정이 좀 달랐다.

대부분의 외국인들은 공개적으로는 한국을 높이 치켜세우면서도 조용한 자리에서는 낙관보다 의문, 긍정보다 반신반의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들이 갖는 의문은 크게 나누어 두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의문은 우리의 지도층의 정치적 의지에 관한 것이다.

그러니까 한국 정치지도자가 앞으로도 일관되게 시장경제를 위한 개방과 개혁을 추구할 의지가 있다고 보는가 하는 것이었다.

둘째 의문은 정치지도자가 아무리 구조개혁을 할 의지가 있다고 하더라도 실제로 그렇게 할 수 있겠는가 하는 것이었다.

한국에는 구조개혁을 가로막는 장애요소가 너무 많다는 뜻이다.

우선 여소야대의 국회에서 어떻게 대통령의 개혁구상이 받아들여질 수 있겠는가 하는 질문을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재벌의 태도에 대해서도 의심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재벌 소유자들이 과연 개혁의 필요성을 진심으로 인식하고 있는가.

노조측의 태도에 대해서도 자신이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지금까지는 어려운 고비를 잘 넘겼지만 앞으로 실업자가 더 늘어나고 상황이 더욱 어려워지면 '사회평화' 가 깨질 위험은 없는가.

그런 경우 현 정부는 어떻게 대처할 것으로 보는가 하는 질문이었다.

재벌이나 노조의 태도보다 더욱 근본적인 문제는 한국 국민의 배타적 민족주의에 있다고 지적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경제위기에 직면해 내부적으로 분열되는 인도네시아 같은 나라와 비교했을 때 국민들이 자진해 금 모으기 운동을 전개하는 한국 국민의 단합하는 모습은 외국인들도 높이 평가하고 있다.

그러나 수입상품이나 외국인 투자회사를 죄악시하는 한국인들의 의식구조에 대해서는 적잖은 불안감을 느끼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한국을 잘 아는 외국인들은 바로 한국의 국민의식이 그렇기 때문에 정부의 공식 정책은 개방을 내세우면서도 실제로 정책을 집행해야 하는 실무 공무원들은 배타적 민족주의를 버리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 경제는 외국자본을 필요로 하고 있다.

물론 외국자본 없이도 살아갈 수 있겠지만 우리가 원하는 경제발전과 삶의 질은 불가능해진다.

그리고 외국자본을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자본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자신의 돈을 한국에 투자하고 싶어지도록 한국의 장래에 대해 믿음을 갖게 만들어줘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는 한국 지도층의 철학과 정책을 믿을 수 있게 설명해야 하고 내부적으로는 정치적 불확실성을 줄여나가면서 재벌과 노조의 보다 적극적인 개혁동참을 유인하고 궁극적으로는 한국 국민의 시대착오적인 배타적 민족주의를 극복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고 외국자본이 굴러들어오기를 기다리는 것은 사막에 비가 오기를 기다리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다.

김경원〈사회과학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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