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북녘산하 북녘풍수]6.개성과 만월대의 풍수 비보책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0면

다시 만월대로 얘기를 돌린다.

자세히 살펴보니 송악산은 형세와는 달리 그 지기지세 (地氣之勢 : 산 모양이 아니라 성격으로 산의 흐름을 살피는 일)가 만월대 쪽으로 휘어져 있다.

만월대가 기하학적인 직선구조를 유지하지 못한 이유를 여기서도 알겠다.

주변 둔덕에는 일반인들의 것으로 보이는 여러 무덤이 눈에 띈다.

개성이 오랜 도시임을 말하는 예일 것이다.

또 그 주위에는 과수원이 꽤 많다.

과일나무의 특성상 과수원은 대부분 기온이 따뜻한 곳에 있게 마련이다.

과수원이 많다는 것은 이곳이 상대적으로 주변 지역보다 기온이 높다는 의미일 터인데 과연 그럴까? '개성시 문화유적 관리소' 에서 나온 깡마르고 점잖은 풍모의 안내원 노인이 바로 "그렇다" 고 대답한다.

앞서 지적한 것처럼 이곳은 송악산 연맥에 둘러싸인 분지 지형이다.

다른 곳보다 따뜻한 것은 당연한 이치다.

그 분의 얘기로는 송악산 북쪽인 박연폭포 쪽 마을과 이곳은 겨울 평균기온이 5~6도 정도 차이가 난다고 한다.

나중에 확인한 일이지만 박연폭포는 이상 난동임에도 불구하고 추위 때문에 있기가 거북할 정도였다.

이제 잠깐 숨을 고르고 풍수술법에서 말하는 몇가지 황당한 도참적 예언과 그와는 달리 합리성이 감춰져 있는 풍수 비보책에 관해 말해보자. 먼저 왕건 (王建) 의 가계를 알아야 하겠는데 간단히 정리하면 처음 개성에 이주한 王씨의 원조 (遠祖)가 호경이고 그의 아들이 강충이다.

강충의 둘째 아들이 읍호술인데 그는 나중에 이름을 보육으로 고친다.

보육의 딸 진의가 당나라 숙종 ( '여지승람' 에는 선종으로 돼 있음) 과 관계해 아들을 낳으니 그가 왕건의 할아버지인 작제건이고 작제건의 아들이 용건이며 그의 아들이 왕건이다.

이미 신라 말 최치원 (崔致遠) 이 "계림황엽 곡령청송 (鷄林黃葉 鵠嶺靑松)" 이라는 참구 (讖句) 를 남겼다고 하는데, 계림은 경주요, 곡령은 개성이니 신라는 망하고 개성에 새 기운이 일어난다는 뜻일 것이다.

여하튼 이때부터 소나무가 등장한다는 것은 유의할 만하다.

대표적인 소나무 얘기는 신라의 풍수 술사 감우 팔원 (八元) 이 강충을 찾아와 삶터를 부소갑의 남쪽으로 옮기고 헐벗은 송악산에 소나무를 심으면 삼한을 통일할 인물이 태어날 것이란 예언을 한 것이다.

지금도 송악산은 화강이 몸체를 그대로 드러낸 동산 (童山 : 나무가 자라지 않은 산)에 가깝다.

소나무는 악지에서도 잘 자라는 수종이므로 이는 적절한 지적이라 할 것이다.

또 늘푸른 나무인데다 한 구멍에서 반드시 두 잎만 내기 때문에 사람들은 음양이 조화를 이루는 상징으로 소나무를 크게 숭상한다.

요즈음 한 구멍에서 세 개의 잎이 나는 소나무가 많은데 그것은 왜송 (倭松) 이라 하여 재래의 소나무와는 다른 것이다.

한편으로 소나무 껍질이 거북이의 등과 같이 생겼기 때문에 사신사 중 북쪽 현무 (玄武)에 해당한다 하여 지금도 무덤이나 능의 북쪽 면에는 병풍을 둘러치듯 소나무를 심는 관습이 있다.

그러나 이런 도참류의 얘기는 너무 많기도 하거니와 예컨대 '금돼지가 쉬는 곳 (金豚墟)' 과 같이 내용이 황당해 설화적 가치는 있을지 모르나 풍수적 의미는 없다고 할 수 있다.

예를 들면 개성의 백호세가 강하고 청룡세가 약해 무신 (武臣) 의 난이 자주 발생하고 훌륭한 문신이 나지 않는다거나, 여자들이 너무 설쳐 나라를 어지럽히게 된다는 따위의 얘기도 있다.

청룡은 해 뜨는 동쪽으로 남자.주인.임금.명예 등을 표상하고, 백호는 해지는 서쪽으로 여자.손님.신하.재물을 표상하는 것으로 풀이하기 때문에 그런 얘기가 나온 것이지만 중요한 것은 사람이지 단지 무대에 지나지 않는 땅에 책임을 미룰 일이 아니다.

자생풍수에서 관심을 갖는 것은 합리적 의미가 숨겨져 있는 비보인데 그 내용 중 중요한 것은 이런 것이다.

만월대에서 개성 시내를 내려다 보면 남동쪽 시가지 한 가운데에 자남산 (子南山) 이 있다.

현재 '金주석' 의 동상이 세워져 있는 것으로도 짐작할 수 있는 일이지만 이곳은 개성 시내의 중심이자 안산 (案山) 이기도 하다.

마치 서울의 남산 같은 역할을 하는 산이란 뜻이다.

본래 만월대의 풍수적 형국은 늙은 쥐가 밭에 내려온 격 (老鼠下田形) 이다.

그런데 자남산이 그 늙은 쥐의 아들 쥐에 해당된다는 것이 문제의 출발이다.

자 (子) 는 십이지 (十二支) 로 하여 쥐이고, 아들이란 의미도 있지 않은가.

이 아들 쥐가 부모 품을 떠나려 한다면 부모의 마음이 편안할 수 없다.

그래서 아들 쥐를 편안하게 해주어 어딘가로 떠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계책을 세웠으니 그것이 바로 풍수에서 말하는 오수부동격의 비보책 (五獸不動格 裨補策) 이다.

먼저 자남산 앞에 고양이를 세워 쥐를 움직이지 못하게 한다.

그러나 고양이 앞에 쥐라고 하듯 그렇게 되면 아들 쥐가 불안해 할 것이다.

따라서 그 고양이를 견제할 개를 만들고 개를 제압할 수 있는 호랑이를 세우며 호랑이가 마음 놓고 날뛰지 못하도록 코끼리를 만드는 것이다.

한데 묘하게도 코끼리는 쥐를 무서워 한다.

이렇게 하여 다섯 짐승이 서로를 견제함으로써 서로가 안정을 취하고 궁극에는 자남산을 진정시키는 목적을 달성하게 된다.

이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시내 한가운데 있는 자남산은 산이라 부르기도 쑥스러운 작은 둔덕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그를 빙 둘러싸고 있는 송악산.진봉산.용수산.오송산.부흥산 등은 험악한 형상의 높은 산들이다.

개성 시내 거주민들이 위압감을 느끼기에 충분한 위용을 갖춘 산이란 뜻이다.

거주지의 지표 상징물인 자남산이 주위에 압도당하는 형세라면 주민들이 환경심리적으로 위축될 수밖에 없으리라는 건 당연하다.

그를 풍수적으로 완화시켜 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오수부동격의 풍수 비보책인 것이다.

개성 시내의 고양이우물 (猫井).개바위 (狗岩).코끼리바위 (象岩).호랑이샘 (虎泉).쥐산 (子南山) 등의 지명은 바로 그 흔적인 셈이다.

만월대를 안내하던 노인은 코끼리바위와 개바위는 알고 있었다.

글 = 최창조·그림 = 황창배사진 = 김형수 〈통일문화연구소 차장〉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