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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회 삼성화재배 세계바둑오픈] 하변의 망령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10면

<결승 1국> ○·쿵제 7단 ●·이세돌 9단

제16보(121~127)=쿵제 7단이 불붙은 전장에서 이탈한 것은 본의는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다시 한 번 묻지 않을 수 없다. 공격해야 할 절호의 시점이었는데 그는 왜 공격 나팔 불기를 주저했을까. 초읽기 탓이라고 말들 하지만 그건 답이 아니다. 진짜 답은 ‘두려움’이란 한마디로 압축된다. 유리한 상황인데 뭐가 두렵단 말인가 물으면 할 말이 없다. 사실은 거기에 우리가 알 수 없는 승부의 비밀이 숨겨져 있으니까….

이세돌 9단이 흑▲로 뻗자 122부터 귀를 살았다. 흑집도 확실하게 많은 건 아니지만 백집은 2선으로 납작하게 깔려 그야말로 영양실조에 걸린 듯 바짝 말랐다.

여기에 백의 발목을 잡는 망령 하나가 하변을 어른거린다. 바로 ‘참고도1’ 흑1로 두는 수. 백이 2로 두어 넘으려 하는 것은 5까지 꽃놀이패에 걸려 양쪽 대마가 모두 위험해진다. 그렇다면 ‘참고도2’처럼 받아둬야 하는데 8까지 사는 모습이 너무 비참하고 A로 인해 유일하게 통통한 귀의 백집마저 말라버린다. 더구나 4와 같은 악수를 둬서는 역전을 도모하기 어렵다. 백의 급선무는 검은 베일에 휩싸인 것 같은 흑의 중앙을 지우는 것이지만 하변의 망령이 앞길을 막는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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