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에 가면 등을 보이지 말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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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영국 외무부가 이탈리아 로마로 향하는 자국 축구팬을 대상으로 20일 이례적인 안전지침을 발표했다.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FC 바르셀로나의 결승전(28일·한국시간)을 보기 위해 약 3만 명의 잉글랜드 팬이 로마로 향한다.

◆시시콜콜한 지침까지 발표=외무부의 지침 중에는 ▶경기장으로 갈 때는 특별히 제공되는 무료 셔틀만 이용하라 ▶걷는 것도, 택시도 안 된다 ▶반드시 여행자보험에 가입하라 등이 있다. 또 현지 축구팬들이 자주 충돌하기로 악명 높은 장소(파아잘레 플라미니오역과 폰트 드카드아오스타 다리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말라는 경고도 있다. 외교적 결례로 비칠 만큼 강한 어조다. 맨유 쪽에 배정된 결승전 표는 2만 장. 맨유 팬 1만 명은 로마 시내 곳곳에 흩어져야 한다. 현지 팬과 충돌, 사고를 일으킬 가능성이 크다. 외무부는 “표가 없는 팬들은 어디서 볼지 미리 계획을 세워라. 대형 스크린 응원이 없다는 것도 명심하라”고 당부했다.

◆잉글랜드-로마의 긴 악연=적지도 아닌 중립지대 경기를 외무부가 걱정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2007년 12월 로마에서 열린 챔피언스리그 조별 리그 맨유-AS 로마의 최종전에서 맨유 서포터 5명이 흉기에 찔렸다. 같은 해 4월 로마에서 열린 두 팀 간 8강전에서도 서포터들 사이에 패싸움이 벌어져 맨유 팬이 중태에 빠졌다. 1984년에도 리버풀 팬 수십 명이 로마에서 부상한 적이 있다.

지아니 알레만노 로마 시장은 “멋진 축제를 유치해 기쁘다. 로마 시민은 두 팔 벌려 잉글랜드인을 환영한다. 맘껏 즐길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영국 일간지 ‘더 타임스’조차 20일 “로마에 가면 등을 보이지 말라. 그곳에는 칼을 갈고 있는 팬이 많다”며 로마를 ‘칼부림 도시(stab city)’로 칭하는 등 우려를 표시했다.

이해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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