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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낙범 3년만의 '순간미술관'…서구 답습에 반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6면

"미술관이 뭐 별거냐?" 폼잡는 미술관, 그 벽면에 붙어 더 폼잡고 있는 명화들. 이런 미술관을 조롱하며 아예 나만의 미술관을 만들어버리는 작가가 있다.

전직 국립현대미술관 큐레이터 고낙범 (38) 이다.

그가 3년만에 다시 '순간 미술관' 을 꾸몄다.

이번에는 아트스페이스 서울 (02 - 737 - 8305) 과 서남미술전시관 (02 - 3370 - 2370)에다가.

고씨의 '순간 미술관' 은 복잡하면서도 단순하다.

잘 알려진 서구 명작 일부를 사진복제하고 바로 옆에 같은 크기의 색띠 작업을 나란히 놓는다.

노랑이면 노랑, 초록이면 초록 등 작품이 연상시키는 주된 이미지색 한가지에서 파생된 7가지 색 띠작업으로 회화를 대체한다.

간단히 몇가지 색으로 환원되는 작품들에서 그린다는 것, 곧 회화의 본질을 물었던 셈이다.

이번 전시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갔다.

색띠를 이루고 있는 각 색마다 하나씩의 초상화를 만들어냈다.

지난 95년 갤러리보다에 세웠던 '순간 미술관' 형식에다 자신만의 컬렉션, 즉 초상화 작업을 보탰다.

서남미술전시관에 전시된 '노랑' 연작은 들라크루아의 '자유의 여신' 에서 출발했다.

크롬 옐로우, 레몬 옐로우 등 명도.채도가 조금씩 다른 노란 톤의 색띠 하나하나가 한 인물의 초상화로 대치된다.

아트스페이스 서울에 펼쳐진 '초록' 연작도 카라밧지오의 '바쿠스' 가 시발점이라는 점만 빼고는 마찬가지. 새롭게 선보인 초상화 연작은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을까. 작가와 아주 가까운 사람들인 초상화 주인공들은 공허한 개념미술을 빈정거리면서 미술을 아주 개인사 (個人史) 적인 이야기로 끌어들이는 역할을 한다.

고씨는 "신체에 대한 담론이 최근 우리 화단에 유행처럼 번지고 있지만 서구의 흐름을 일방적으로 답습하는 것이 아니냐" 고 반문하며 "미술의 관심을 이데올로기적인 것에서 개인적인 것으로 전환하는 시도" 라고 설명한다.

전시이름을 개념미술 대가인 브루스 노만의 '손에서 머리로 (From Hand to Head)' 를 패러디한 '몸에서 얼굴로' 로 정한데서도 이런 생각을 읽을 수 있다.

"모더니즘이 멀리 내다버린 재현미술을 통해 모더니즘의 특성을 명료히 잡아내 보여준다" 는 아트스페이스 서울 이주헌 관장의 말처럼 인물화 형식을 빌린 고낙범의 고도의 '추상' 작업은 우리 미술이 안고있는 문제를 아주 잘 보여주고 있다.

안혜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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