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관 인선 성격과 의미]전문성 중시 내부 발탁…정치색 배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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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차관인사는 장관인사와 반대로 정치성을 배제하고 전문성을 강조했다.

정치인들이 대거 포함됐던 장관자리와 달리 차관인사에서 정치인은 단 한명도 찾아볼 수 없다.

이같은 대조적 인사는 내각 운영에 관한 김대중 (金大中) 대통령의 준비된 구상에 따른 것이다.

박지원 (朴智元) 청와대대변인은 내각 운영방식에 대해 "장관은 정치적 위치에서 국정을 총체적으로 담당하고, 차관은 모든 공무원들과 함께 정부를 튼튼하게 하는 역할" 이라고 밝혔다.

다시 말해 장관은 정치를, 차관은 행정을 맡는 '내각제적 운영방식' 을 택하겠다는 얘기다.

이같은 구상에 따라 차관은 대부분 전문관료, 그중에서도 같은 부 (部) 출신을 주로 발탁했다.

YS정권 초기에 많았던 교수나 언론인 출신으로는 윤원배 (尹源培.숙명여대 교수) 금융감독위 부위원장이 유일하다.

대신 금감위는 이헌재 (李憲宰) 위원장이 관료출신이다.

그러나 자세히 뜯어보면 분야별로 조금씩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내부 발탁과 전문성 보장이 가장 철저히 지켜진 곳은 경제분야. 경제관련 주요 포스트에는 전문 경제관료들이 대거 승진.임명됐다.

수석 경제부처인 재경부 차관에 정덕구 (鄭德龜) 제2차관보가,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에 한덕수 (韓悳洙) 통상산업부차관이, 산업자원부 차관에 최홍건 (崔弘健) 특허청장이 각각 발탁된 것이 그 예다.

특히 신설된 예산청장에 그간 예산업무를 총괄하던 안병우 (安炳禹) 재경원 예산실장이 승진하면서 그대로 자리를 옮긴 것은 업무의 연속성을 강조한 예로 주목된다.

경제관련 부처의 이같은 전문성 원칙 강조는 국제통화기금 (IMF)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한치의 행정공백도 있어선 안된다는 절박한 상황과 경제관료의 정치적 투명성을 감안한 인사로 보인다.

그러나 정치적으로 민감한 권력기관의 경우는 양상이 다르다.

전체적인 지역안배와 무관하게 안기부.경찰 등 권력기관은 호남출신이 철저하게 장악했다.

안기부의 경우 업무 연속성이나 내부발탁 원칙과 별개로 호남출신 외부인사가 1, 2차장 및 기조실장까지 차지했다.

김세옥 (金世鈺) 경찰대학장이 서울경찰청장을 제치고 총수가 된 것도 호남 인맥 구축의 의지를 말해주는 대목이다.

여소야대 속에서 국정을 강력하게 이끌어가고자 하는 대통령의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해석된다.

상대적으로 비중이 덜한 처 (處).청 (廳) 의 경우 유임이 많은 것도 눈에 두드러진다.조달청장.산림청장.관세청장.중소기업청장.총리비서실장 등 5명이 그대로 유임됐다.

법제처와 보훈처의 경우는 기관 자체가 장관급에서 차관급으로 축소되면서 기존의 차관급 차장이 그대로 처장이 돼 사실상 유임된 셈이다.

오병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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