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각종 발표 비교기준 왜 바꾸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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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전년 같은 기간의 실적과 비교하고 있는 각종 통계의 비교기준을 정부가 갑작스럽게 직전 기간 실적과 비교하는 방식으로 바꾸겠다고 나섰다.

전년동기 대비로 보면 특정 기간의 실적이 일시적으로 높아질 경우 두고두고 다음해 통계가 왜곡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지난해 4분기 갑자기 늘어난 수출실적이 대표적인 예다. 그러나 투자와 소비는 1년 중 4분기에 집중되는 계절적 특성이 있어 전기 대비로 올 4분기 투자.소비 증가율을 계산하면 또다른 통계적 착시현상을 불러올 수 있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계절적 요인에 의해 투자.소비가 늘어난 것을 극심한 침체에서 살아나는 신호로 잘못 판단하게 만들 수 있다는 얘기다.

한국은행 관계자는 "전기 대비로 통계기준을 바꾸면 계절적 요인에 따라 통계가 심하게 들쭉날쭉할 수 있어 전년동기 대비 기준을 써왔다"면서 "특정 부문에 일시적으로 통계 착시현상이 나타난다 해서 통계기준을 바꾸기보다는 전기 대비 통계로 보완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지적했다.

◇투자.소비 통계의 왜곡=투자와 소비는 매년 4분기에 집중되는 계절적 특성이 강하다. 따라서 투자와 소비를 전기 대비로 비교하면 매년 4분기에 증가율이 높게 나온다.

이를 기준으로 삼을 경우 통계적 착시현상에 의해 투자.소비가 극심한 침체에서 벗어나고 있다고 판단할 우려가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금융계 관계자는 "대기업은 현금을 쌓아두고도 투자를 안 하고, 소비 위축은 고소득층으로까지 확산되고 있다는 통계가 이미 여러 차례 나왔는데 계절적 요인에 의한 증가를 투자.소비의 회복이라고 오판하면 경기 양극화의 골이 더 깊어질 수 있다"고 주장했다.

◇수출의 착시현상=지난해 4분기 수출이 직전 분기보다 무려 19%나 늘어난 데서 통계의 '단층'이 생겼다. 이 때문에 올 4분기 수출이 3분기보다 늘어난다고 해도 전년동기와 비교하면 증가율은 뚝 떨어질 가능성이 크다. 더욱이 미국 등 선진국과 중국이 경기과열의 억제에 나서 올 4분기 수출은 지난해 4분기만큼의 실적을 기대하기 어렵다. 이럴 경우 그동안 경기를 홀로 이끌어온 수출마저 급격히 둔화되는 것처럼 보여 경기침체에 대한 불안감이 더 커질 수 있다는 게 정부의 걱정이다.

수출은 계속 잘 되고 있는데 비교기준의 문제 때문에 수출 증가세가 확 꺾이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는 것이다.

정경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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