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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혈 바둑 팬 가수 김장훈씨 "연예계선 내가 바둑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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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지금 TV에서 후지쓰배 하고 있죠? 박영훈 사범이 요다 노리모토(依田紀基.9단)를 꼭 이겨야 할텐데…."

가수 김장훈(37)씨는 인터뷰하러 들어서자마자 바둑을 화제로 꺼냈다. 제17회 후지쓰배 세계바둑선수권대회 결승전이 열리던 지난 5일 오후였다. "생방송 스케줄만 없었으면 일본으로 날아가 응원했을텐데, 이것 참."

'빨간 머리''치마 입은 남자''개그맨보다 더 웃기는 가수'…. 그간 콘서트와 방송을 통해 알려진 김씨의 단편적인 모습만을 기억하는 사람들이라면 그의 지극한 바둑 사랑이 낯설게 느껴질지 모르겠다. 그러나 김씨는 연예계에서 소문난 열혈 바둑 팬이다. 바둑TV에 출연해 여류 프로기사인 김효정 2단에게 넉점으로 이긴 적도 있다. 그의 실력은? "아마 5단일 걸요, '메이비(maybe.아마) 5단'이요."

지금껏 1000회가 넘는 공연을 했던 김씨는 지난달 29일엔 난생 처음 프로 바둑기사들을 청중으로 앉혀놓고 미니 콘서트를 열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제1회 전자랜드배 왕중왕전의 개막식에서였다.

"정말 가수 되기 잘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아니면 어떻게 그렇게 많은 프로 기사를 가까이에서 만날 수 있었겠어요. 그 뿐인가요? 존경하는 조훈현 국수님이 무대로 나와 저를 안아주기까지 하셨는데요."

김씨는 1999년 말 삼성화재배 대회에 구경갔다가 해설자로 나선 조9단과 만났다. 문제는 당시 함께 있던 조9단의 딸에게 "콘서트 표를 주겠다"고 약속해놓고 까맣게 잊은 것.

"나중에 그 딸이 제 홈페이지에 들어와 '약속도 안 지킨 거짓말쟁이'라는 글을 남기는 바람에 기억이 되살아났죠. 이번에 그 얘길 꺼냈더니 조 국수님께서 '꼭 표 줘야돼'라며 웃으시더군요."

김씨는 마침 다음달 연세대 노천극장에서 생애 첫 야외 콘서트를 열 참이라 5년 만에 약속을 지킬 수 있게 됐다.

김씨는 초등학교 때 바둑을 배웠다. 바둑 잘 두는 동네 아저씨들을 차례로 찾아다녔고, 나중엔 학교 바둑반에 들어가 실력을 키웠다. 중학교 땐 기타에 미쳐 지내느라 잠시 바둑을 잊었다가, 고교.대학 시절에 열정이 되살아나 친구들과 내기 바둑 깨나 두었다고 했다.

"요즘도 방송 대기시간에 짬짬이 바둑을 두죠. 가수 신대철씨, 개그맨 신동엽씨랑도 둬봤는데 아직 연예계에서 저보다 더 잘 두는 사람과는 붙어본 적 없어요."

아직 미혼인 그는 "나중에 바둑 잘 두는 여자랑 결혼해서 설거지 내기바둑 두며 살면 재미있을 것 같다"고 했다.

글=신예리 기자, 사진=장문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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