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對共기능 손상없는 개혁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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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김대중 (金大中) 정부가 정권출범과 함께 국가안전기획부에 대한 대대적인 개혁에 나선 것은 충분히 수긍할 수 있다.

작년말 대통령선거과정에서 안기부 간부들이 金대통령의 낙선을 위한 '북풍 (北風) 공작' 에 조직적으로 개입한 것이 검찰 수사에서 드러나고 있다니 개혁의 당위성은 더욱 커진다.

사실 안기부의 비 (非) 정치화는 정권을 쥔 사람이 굳은 사명감을 갖고 추진하지 않으면 흐지부지되기 십상이다.

전임 김영삼 (金泳三) 대통령과 80년 신군부가 안기부의 지나친 국내정치개입 차단을 내걸고 조직축소와 인적 숙정을 단행했지만 번번이 내건 목적 달성에는 실패하고 말았다.

이처럼 안기부개혁이 어려운 것은 우선 권력자의 속성과 안기부의 독특한 생리에 기인한다.

과거 안기부의 권력남용을 질타하다가 대통령이 되고선 곧 정보기관의 정권보위기능의 달콤함에 빠진 전임자에서 보듯 안기부는 권력자의 수족이란 역기능을 갖고 있다.

때문에 전두환 (全斗煥).김영삼정부가 단행한 두번의 안기부개혁은 인적 퇴출 외에 안기부의 권력지향성을 바꾸거나 조직원이나 본래의 기능인 대공 (對共).해외정보수집능력의 질향상 도모에는 기여한 바가 거의 없다.

오히려 권력자의 일관성없는 작위적 조직운용은 안기부의 고유기능을 약화시키고 대공분야 종사자들의 사기와 능력을 저하시키는 부작용을 초래했다.

정보업무의 문외한이 조직을 장악하고 대공.해외정보의 베테랑들이 과거정권에 협조했다는 이유로 적지 않게 쫓겨난 것은 국가적 손실로도 볼 수 있다.

김대중정부의 안기부개혁은 두번 다시 전임자들의 어리석음을 되풀이하지 않길 바란다.

북풍공작의 책임자와 적극 가담자는 철저히 가리되 이것이 표적수사로 비치거나 지시에 따라 소극적으로 움직인 요원들까지 내모는 결과를 빚어서는 안된다.

만의 하나 개혁이 비합리적 인적 청산의 계기로 인상지워진다면 안기부는 구 (舊) 여권 지향에서 국민회의 지향의 집단으로 바뀌는 데 그치고 말지 모른다.

국가정보기관의 개혁은 사람보다 시스템개혁에 초점을 맞춰야 하며 무엇보다 대공.안보기능의 손상이 없도록 유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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