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실용] '서울에서 서울을 찾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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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서울을 찾는다
홍성태 지음, 궁리, 389쪽, 1만5000원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은 아름다움을 찾아내는 심미안에만 해당하는 말이 아닌 모양이다. 얼마든지 소박하게 아름다운 것들도 아는 만큼 추하게 보이기도 하나 보다. 『서울에서 서울을 찾는다』를 읽으면서 깨달은 바다. ‘서울 만보기’라는 부제에 어울리게 서울 청량리 토박이인 저자는 도심 한복판 광화문에서부터 압구정동·난곡에 이르기까지 열심히 누비며 서울을 찾아나섰다. 그러나 발품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성실함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꼭 고맙지만은 않다. 오히려 평범한 시민이 서울 어느 한구석에서 얼마든지 누릴 수 있는 소박한 즐거움마저 강압적으로 빼앗으려는 것 같아 거북스럽다면 독자의 지나친 편협함일까.

저자가 바라보는 서울은 만신창이다. 서울은 600년 고도(古都)이 지만 역사의 흔적을 찾아낼 수 없다. 그 이유는 일제 탓이다. 더 정확히 말해 일제를 그대로 이어받은 박정희 전 대통령, 아니 저자의 ‘친절한’ 설명에 따르면 다카기 마사오라는 독재자의 폭압적 근대화 때문이다. 그래서 저자의 눈에 비친 서울은 600년 고도를 파괴한 독재자가 역사를 제물로 삼은 슬픈 공간일 뿐이다.

사실 서울에 살면서 서울에 온전히 만족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가난하면 가난한 대로, 또 부자는 부자 나름으로 서울은 아쉽다. 그러나 지하보도와 육교를 오르내리며 불편한 도시 서울을 불평하다가도 어쩌다 잠깐 짬을 내 들른 덕수궁 한끝에서, 조명이 환하게 빛나는 한강다리에서 숨을 크게 내쉬며 서울을 즐긴다. 혼잡한 간판과 자동차 소음을 잊은 채. 그러나 저자는 “너희가 역사를 알아”라며 이런 소박한 독자를 꾸짖는다.

서울을 개발할 때 서울의 역사와 생태에 대한 세심한 배려가 필요했다는 저자의 말에 동감하지 않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박정희에게 모든 비난을 집중하는 저자의 시각에 동의하기는 쉽지 않다. 박정희에 대한 언급 없이는 한 페이지도 넘기기 어려운 이 책은, 그래서 ‘서울 만보기’라기보다 ‘박정희라는 프리즘을 통해본 서울 헐뜯기’에 가깝다.

부자들에 대한 조롱도 거북하다. 저자에겐 타워팰리스가 ‘비만의 성채’일지 몰라도 누군가에겐 그저 생활의 공간이다. 그러나 타워팰리스에 산다는 이유만으로 ‘높은 곳에서 호화롭게 살기 경쟁을 벌이는 데서 자신의 존재가치를 찾는 돈 많은 바보’라고 비아냥거린다. 책 마지막 장을 덮을 땐 이상만 있고 현실은 없는 공허함을 누를 수 없다.

안혜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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