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아침]이병기 시조 '젖'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나의 무릎을 베고 마지막 누우시던 날,

쓰린 괴로움을 말도 차마 못 하시고

매었던 옷고름 풀고 가슴 내어 뵈더이

다.

까만 젖꼭지는 옛날과 같으오이다

나와 나의 동기 어리던 팔구남매

따뜻한 품안에 안겨 이 젖 물고 크더이

다.

이병기 시조 '젖'

지긋이 나이 든 자식이 늙은 어머니의 임종 감회를 평범하게 그리고 간절하게 나타내고 있다.

긴 세월 8, 9남매나 먹인 젖이 말라붙은 가슴을 노래함에 어찌 갖은 재조나 부리는 풍월이랴. 현대시조의 중흥이라 할 가람 이병기 (李秉岐.1891~1968) 시조의 소탈한 문기 (文氣) , 그것은 생각할수록 시범적이기도 하다.

지난 시대의 문단에는 독기가 없었다.

난초 꽃 하나 벙그는 것으로 빙그레 웃던 가람같은 어른이 있어서였다.

고은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