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국민과 통하고 싶은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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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대통령의 말이 또 한번 논란이 되고 있다. 행정수도 이전 반대를 대통령에 대한 불신임 운동 내지 퇴진 운동으로 본다는 대통령의 말은 참으로 놀랍다. 그런 말이 나올 수 있는 논리적 비약이 놀랍고, 또다시 불필요한 소란이 벌어지는 것이 안타깝다. 대통령 불신임 문제로 국민 투표까지 거론됐던 것이 불과 얼마 전 아닌가. 핵심을 벗어나서 벌어지는 소모적인 기 싸움이 걱정스럽다.

행정 수도 이전에 반대하는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다. 물론 찬성하는 데도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그런데, 행정수도 이전에 반대하는 것이 대통령 퇴진 운동이라니, 논리적 비약이 묻어 있다. 원래부터 대통령 때문에 행정수도를 옮기자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행정수도를 옮기자면 대통령을 지지하는 것이고, 반대하면 대통령 퇴진 운동인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사안에 대해서 안 해도 될 말을 덧붙여서 기름을 부은 격이다. 정책 자체로 다뤄야 할 문제를 정치적으로 비화시켰다.

대통령의 말은 보통 사람들의 말과는 무게가 다르다. 그래서 대통령의 말에는 앞뒤와 좌우를 고려하는 커뮤니케이션 전략이 필요하다. 한마디 한마디가 엄청난 무게를 갖기 때문에, 그 파장과 진동을 생각해야 한다. 그래서 작고한 레이건 대통령은 '위대한 커뮤니케이터'라는 별칭을 얻기까지 철저하게 전략을 세운 커뮤니케이션 스타일을 고수했다. 연설문의 한 줄 한 줄은 물론이고, 어느 부분에서 어떤 농담을 해야 적절할지까지 철저하게 전략을 짰다. 허튼 말은 한마디도 나올 수가 없었다. 물론 레이건 대통령의 뒤에는 뛰어난 커뮤니케이션 전략 스태프가 있었다.

정치적인 평가를 떠나서 커뮤니케이션 스타일만 가지고 볼 때, 노 대통령은 '위대한 커뮤니케이터'가 아니라 '위험한 커뮤니케이터'다. 대통령의 거침없는 커뮤니케이션 스타일이 빚어내는 사회적인 비용이 크기 때문이다. "대통령직 못 해먹겠다"는 발언은 재신임투표 선언으로 현실화됐고, "불법 선거자금이 한나라당의 10분의 1을 넘으면 정계를 은퇴하겠다"는 발언은 거침없는 화법의 정점을 보여주었다. 위기 때마다 "나 그만둘래"가 비장의 카드인가? 너무 극단적인 방식의 커뮤니케이션이다.

대통령의 커뮤니케이션 스타일을 보면, '공적 담화'를 해야 할 자리에서 '사적 담화'를 한다. 국민을 설득하고 힘과 신뢰를 심어주어야 할 대국민 담화 자리에서 조카의 취업과 결혼 이야기가 불필요하게 길게 나온다. 청문회 스타였을 때나 대통령 후보였을 때 사람들에게 호감을 준 '투사형' 커뮤니케이션 스타일이 대통령 자리에도 어울리는 건 아니다. 대통령의 자리에 걸맞은 커뮤니케이션 방식으로 진화해야 한다. 하고 싶은 말을 하나도 남김 없이 속에서 끄집어내서 다 하는 것이 리더의 커뮤니케이션으로 반드시 좋은 것은 아니다. 말의 텍스트와 상황의 컨텍스트가 묘하게 부조화를 이루는 경우도 많다.

대통령이 기자회견을 하거나, 토론회에 나오거나, 국민 담화를 할 때면 조마조마하고 두렵다. 오늘은 또 무슨 거침없는 발언이 나올지 몰라서 두렵다. 해야 될 말은 놔두고, 안 해도 될 말 때문에 쓸데없는 싸움에 휘말리는 대통령의 모습은 안쓰럽다.

국민과 통하고 싶은가? 서로 통하는 데는 노하우가 필요하다. 통하는 방법을 잘 알지 못 하거나, 알고 싶어하지 않을 때 소통은 어려워진다. 대통령이 국민과 통하고 싶다면, 커뮤니케이션 스타일은 좀 더 가다듬어야 한다. 대통령 자리에 걸맞은 커뮤니케이션 방식이 필요하다. 더 이상 안 해도 될 말 때문에 한바탕 소동이 빚어지는 일은 없어야겠다. 국민의 70%가 부적절하다고 생각하는, 통하지 않는 대통령의 메시지는 위험하다.

강미은 숙명여대 교수.언론정보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