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치오네의 꿈과 도전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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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선데이, 디시전메이커를 위한 신문"

피아트 자동차 그룹의 최고경영자(CEO) 세르조 마르치오네가 미쳤다.
올해 56세인 마르치오네는 피아트를 미국 크라이슬러, 독일의 오펠과 합치는 일을 추진하고 있다. 알다시피 크라이슬러는 파산 신청을 했고 오펠의 모회사인 GM은 파산을 목전에 두고 있다. 세 못난이를 합친다고 수익을 낼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이 트리오가 지금보다 훨씬 나은 상황에 처해 있었더라도 합병은 정신 나간 생각으로 취급됐을 것이다.

지금 이탈리아와 독일·미국 사이에 필요한 협력이 어떤 것인지 생각해 보라. 어떤 공장을 폐쇄하고 어떤 차종을 어느 곳에서 생산할지를 결정해야 한다. 결코 쉽지 않다. 특히 독일과 이탈리아에서 일자리 축소를 우려한 정부의 반대가 심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려운 시장 환경과 자동차 업계 경영진들의 뒤떨어진 사고방식을 생각해 보면 마르치오네식의 미친 생각이 산업의 수준에 딱 맞아떨어질지도 모른다.

미국 정부는 이미 피아트가 크라이슬러 지분 20%를 취득하는 계획을 승인했다. 마르치오네는 또 오펠·사브 등 유럽 내 브랜드와 일부 라틴아메리카 자회사를 GM으로부터 사들이는 협상을 하고 있다. 마르치오네는 자동차 회사의 규모 확대가 불가피하다고 말해 왔다. 이탈리아 튜린에 자리 잡고 있는 피아트는 한 해 200만 대 안팎을 만들고 있다. 생산량을 550만~600만 대로 늘려야 가격 경쟁력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산업 전체로 보면 이미 공급이 수요를 50%나 웃돌고 있어 생산 감축이 필요하다는 게 마르치오네의 주장이다. 지금은 정부의 재촉을 받는 미국 회사들이 공장 폐쇄와 감원을 통해 ‘합리화’에 앞장서고 있다.

변호사이자 회계사인 마르치오네는 2004년 3년간 적자를 내던 피아트의 경영을 맡았다. 그해 역시 16억 유로 적자를 냈지만 이후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하지만 이탈리아를 비켜가지 않은 경기침체로 올 1분기 또다시 4억1000만 달러의 손실을 입었다. 2007년 24.09유로까지 올랐던 피아트 주가는 현재 7유로 선을 맴돌고 있다.

마리치오네는 피아트의 자동차 사업 대부분을 합병을 통해 태어날 새로운 그룹으로 편입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상용 트럭과 페라리·마세라티 등의 럭셔리카, 농업 및 건설용 기계만 기존의 지주사에 남겨 두려 한다. 하지만 그의 꿈을 실현하는 데엔 어마어마한 장벽이 가로막고 있다. 자동차 회사 간의 합병은 결코 쉽지 않다. 크라이슬러와 다임러 사이의 불행했던 결합이 대표적인 사례다. 다임러는 2007년 차입매수 전문인 서버러스캐피털에 크라이슬러를 팔았고, 미국 자동차 산업은 위기에 봉착했다.

공장 폐쇄와 해고도 문제다. 독일과 이탈리아에서는 미국에서처럼 쉽게 이것을 할 수 없다. 독일 정부는 지난주 오펠의 판매 확대와 이 회사의 독일 내 일자리 2만5000개를 유지하기 위해 정부 보증을 제공할 수 있다고 밝혔다. 마르치오네가 오펠을 합병해 대규모 인력 감축을 시도한다면 독일 정치인들이 유쾌해하진 않을 것이다.

물론 마르치오네가 이 정도에 기가 꺾일 리 없다. 그는 주식을 밀라노와 프랑크푸르트 증시에 동시에 상장할 것이라며 합병을 기정사실로 만들기 위해 애쓰고 있다. 어려움을 뻔히 알면서도 합병을 추진하는 그는 기적을 믿는 사람이다. 나는 인수합병을 통한 거대 기업 건설에 회의적인 편이지만 이번엔 그에게 응원을 보내고 싶다.

데이비드 폴리 블룸버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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