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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열녀는 사대부 강요로 ‘발명’됐어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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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문학 텍스트 분석을 통해 역사에 나타난 인간행위와 그 심리를 연구하는 강명관 부산대 한문학과 교수. 송봉근 기자

돌베개, 856쪽
3만 8000원

발칙하다. 열녀는 한 남편만을 섬긴다는 일부종사(一夫從事)의 정신을 몸으로 실천했던 조선의 이상적 여인상 아닌가. 두 임금을 섬기지 않는다는 불사이군(不事二君)에 충실했던 선비와 나란히, 우리 전통문화의 꽃으로 여겨지던 ‘가치’ 중 하나다. 그런데 만들어졌단다. 아니, 강요되었다고 한다. 이건 여성사 혹은 여성학사에 큰 획을 그은 시몬느 보봐르의 단언, “여성으로 태어나는 게 아니라 여성으로 만들어진다”와 같은 맥락이다.

『열녀의 탄생』 을 통해 이런 파격적 주장을 편 이는 부산대학교 한문학과 강명관(51) 교수. 14일 부산광역시 장전동에 자리잡은 부산대학교 연구실에서 그를 만났다.

“열녀는 우리 역사를 관통하는 초역사적 관념이 아닙니다. 조선조에 들어 양반 사대부남성들이 국가권력을 이용해 만들어낸 거죠.”

고즈넉한 연구실에 울리는 그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그는 다양한 자료를 분석해 이에 대한 논거를 촘촘히 제시했는데 그 중 하나가 ‘열녀’라는 말 자체가 조선 이후에 등장한다는 사실이다.

그에 따르면 자신의 성적(性的) 종속성을 천명하기 위해 신체를 훼손하고 심지어 목숨까지 희생하는 열녀는 고려조 이전에 존재하지 않았다. 아예 그런 용어조차 없었단다. 여말(麗末)에 가서야 정이오의 『열부최씨전』같은 책이 나오지만 그들은 조선의 건국세력이었고 이마저도 열녀 아닌 열부였다.

“고려 시대엔 남편 사후에도 절개를 지킨 ‘절부(節婦)’가 있었지만 여기 대응하는 ‘의부(義夫)’란 개념이 있었으니 ‘절개’가 여성에게만 강요된 것은 아니었죠.”

그러던 것이 성리학을 국가 이념으로 하는 조선에 들어서며 바뀌었단다.

“조선 왕조의 기본법전인 경국대전에서 ‘의부’가 사라집니다. 뿐만 아니라『소학』 『삼강행실도』열녀편『내훈(內訓)』을 펴내는 한편 ‘열녀’에게는 수신전을 줘 포상을 하고 재가한 여성의 자녀는 벼슬길에서 차별하는 등 국가가 나서 여성종속 이데올로기를 내면화하는 작업을 폈죠”

그는 삼강행실도 열녀편의 경우 중국 원전과 꼼꼼하게 대조해 남성 중심주의에 도전하는 여성들 이야기는 빠져 열녀전(列女傳)이 열녀전(烈女傳)으로 ‘편집’된 사실까지 짚어냈다.

그 결과 어우동 일화 등에서 보이는 개방적 성 풍속, 아들 딸 구분하지 않는 균분상속이 점차 사라졌고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거치며 유교적 가부장제가 결정적으로 강화되었다는 설명이다. 송시열의 『우암선생계녀서』처럼 내로라는 집안마다 딸과 며느리를 위한 한글훈육서를 펴낸 것도 양란 이후라고 한다.

이 때문에 민간에서도 열녀 열풍이 일어 열녀가 부쩍 늘었고 허벅다리 살을 베어 목숨이 위태로운 남편을 살렸다는 할고(割股)가 널리 유행했다. 열행(烈行)의 잔혹성이 강화됐다는 증거다.

그는 왜 이런 연구를 하게 됐을까.

“어머님이나 큰 누님이 꿈과 재능을 제대로 꽃 피우지 못하는 걸 보고 안타까워 한 게 계기가 됐죠. ‘나도 여자로 태어났더라면…’하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1999년 자료조사에 착수했는데 결국 10년 걸렸네요”

지난해 4권의 학술서를 쏟아내 작은 화제가 냈을 정도로 소문난 ‘공부꾼’인 강 교수가 그만큼 공들인 노작(勞作)이다. 하지만 『조선의 뒷골목 풍경』 등 그의 전작에 친숙한 일반독자들로선 다소 딱딱할 터이다.

“흥미로운 주제긴 하지만 주석까지 더해 800페이지가 넘으니 대중서는 아니죠. 그렇지만 이 시대 마초(macho· 남성우월주의자)들은 한 번쯤 읽었으면 합니다”

우리 사회에 여성 차별 문화와 의식이 여전히 남아 있다고 믿는 그의 바램이었다.

글=김성희 기자
사진=송봉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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