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각부처 '개점휴업' 일손놓은 행정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정부 각 부처가 '개점휴업' 상태다.

'기형 (畸形) 정부' '유령 (幽靈) 장관' 얘기도 심심치 않다.

김종필 자민련명예총재의 총리임명 동의안 처리가 지연되면서 헌정사상 유례없는 행정공백 현상이 계속되고 있다.

총리가 임명되지 못해 새로운 정부조직법 등이 시행되지 못하고, 새 장관 임명도 안되는 바람에 정부 각 부처는 일손을 놓고 있다.

특히 정부조직 개편으로 없어지는 일부 부처는 이미 이삿짐을 다 싸버렸고, 예산까지 집행을 정지해 모든 게 정지됐다.

김대중 대통령은 26일 "새 정부조직법 공포절차를 밟도록 하라" 고 지시했다가 파생될 문제가 한둘이 아니라는 내각의 '신중 건의' 를 받고 연기키로 하는 등 출범 이튿날부터 시련을 겪고 있다.

金대통령은 이에 따라 당분간 현재의 고건 (高建) 총리체제를 유지키로 하고 김중권 (金重權) 비서실장을 통해 高총리 등 내각에 정상근무를 지시했다.

高총리는 이날 오전 정부 세종로청사에서 '국정공백방지 관계장관회의' 를 여는 등 대책마련에 나섰으나 별다른 묘안이 없어 정치권의 움직임만 바라보고 있다.

高총리는 경제.통일부총리와 총무처.법제처.정무1장관 등이 참석한 대책회의에서 "국정의 공백은 한순간이라도 있어서는 안된다" 며 "행정 각부는 행정공백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물러나는 장관들이 당분간 최선을 다해달라" 고 당부했다.

하지만 말이 그럴 뿐이다.

심우영 (沈宇永) 총무처장관은 회의직후 기자들과 만나 "법적으로 기존 내각이 그대로 근무하는데 문제는 없다.

하지만 정책결정과 같은 중요한 일은 할 수 없고, 하지도 않을 것" 이라며 사실상 행정마비를 시인했다.

沈장관은 또 정부조직법 문제와 관련, "새 법을 공포하는 경우에는 새로 만들어지거나 이름이 바뀌는 부처 7곳의 장관이 공석이 돼 바로 임명해야 하는 문제가 있기에 신중을 기하기로 했다" 며 공포연기 방침을 밝혔다.

정부조직법 등의 공포가 미뤄짐에 따라 당분간 구 (舊) 내각인 高총리 내각이 金대통령을 보좌하는 이상한 상황이 불가피하게 됐다.

그러나 정부조직법이 지난 19일 국회에서 의결됐기에 대통령은 3월6일 (15일 이내) 까지 법안을 공포해야 할 의무가 있고, 대통령이 공포하지 않을 경우 국회의장이 3월11일 (5일 이내) 까지 대신 공포해야 한다.

따라서 현재의 과도내각은 길어봐야 3월11일까지만 존속이 가능하다.

오병상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