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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함이 ‘한국 홍보 전문가’인 사나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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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서경덕씨가 뉴욕 타임스에 게재한 전면 광고 원판을 보여 주고 있다. 왼쪽은 2008년 7월 9일자에 실린 독도는 한국 땅이라는 내용의 광고이고, 오른쪽은 2009년 5월 11일자에 게재한 광고로 일본해라는 표기는 동해의 잘못이라는 내용이다. [안성식 기자]

 2005년 7월 27일. 미국의 뉴욕 타임스(NYT) 사회면에 ‘독도는 한국 영토입니다’라는 광고가 실렸다. 당시 31세였던 서경덕(35)씨의 작품이었다. 그는 4년간 NYT, 워싱턴 포스트, 월스트리트 저널에 일곱 차례 광고를 실었다.

11일 NYT에 실린 ‘Error in NYT(뉴욕 타임스의 오류)’라는 전면 광고는 파격적이었다. NYT가 ‘일본해(Sea of Japan)’로 표기한 것은 ‘동해(East Sea)’라고 해야 맞다는 내용이었다. 서씨가 이 문안을 보여줬을 때, NYT는 선뜻 받아들이지 못했다고 한다. 몇 차례 광고를 내준 고객이라 해도, 신문사 입장에선 어려운 선택이었다. NYT는 일주일간 심의를 거쳐 게재를 확정했다. 서씨는 “신문의 유연함에 감사한다”고 했다. 하지만 ‘서씨가 광고를 내면 국제적인 화제가 된다’는 경험이 이번 일을 성사시킨 진짜 힘이었을 것이다. 뉴욕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뉴욕 현대미술관(MOMA), 스미스소니언 자연사박물관의 한국어 안내를 만든 이도 서씨다.

서씨는 부자가 아니다. 그는 “세게 부딪히면 안 될 일이 없다”고 했다. 뉴욕에 오는 관광객이라면 누구나 들른다는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2006년까지 그곳에는 영어·프랑스어·독일어·스페인어·이탈리아어·중국어·일본어 등 7개 언어만 서비스됐다. 서씨는 무작정 담당자를 찾아갔다. 박물관 측은 “음성 서비스를 위해 8만 달러가 필요하다. 돈이 마련되면 계약을 고려하겠다”고 했다. 고작 그 정도 돈 때문에…. 서씨는 유력지에 자신이 낸 광고를 보여줬다. 그러곤 “지금은 돈이 없다. 계약서를 써 주면 그걸 가지고 가서 기업의 후원을 받아오겠다”고 했다(“계약을 해 주면 그걸 가지고 대출을 받아 공장을 짓겠다”던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일화를 듣는 듯했다). 서씨의 생고무 같은 요구에 박물관은 6개월의 기한을 줬다. 한국에 돌아온 그는 계약서를 들고 기업들을 찾았다. 그리고 메트로폴리탄의 세계 여덟 번째 언어로 한국어를 등록시킨다.

업계에 따르면 NYT의 전면 흑백광고료는 1억5000만~2억원 정도다. 지난해 7월 NYT에 광고가 실린 뒤 네티즌은 모금운동을 펼쳤고, 3주 만에 2억1000만원을 모아주기도 했다. 여러 연예인과 기업이 후원자가 됐다.

그의 웹사이트는 ‘ForTheNext Generation.com’이다. 다음 세대를 위한 것. 그는 자부심을 얘기하고 싶었다. 불만이 많은 한국인, 실은 자부심에 목말라 있다는 것이다. 뉴욕의 거대 박물관에서 느끼는 작은 자부심이 결국 다음 세대를 바꿔놓을 것이라는 믿음. 그런 신념이 그를 ‘한국 홍보’에 미치게 하고, 수많은 후원자를 낳았다. 광고 전문가, 디자이너 등 여러 사람이 그의 일을 돕고 있다. 성신여대 객원교수인 그의 명함엔 ‘Korea PR Expert(한국 홍보 전문가)’라는 직함이 쓰여 있다.

강인식 기자 , 사진=안성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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