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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장애인 장남석의 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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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2면

“저는 LG를 1994년부터 좋아해온 시각장애인입니다. 앞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야구 중계를 들으면서 LG를 응원하고 있습니다. 저의 작은 바람이 있다면 제가 음악대학을 나왔기 때문에 잠실 야구장에서 열리는 LG 홈경기 때 애국가를 연주하고 싶습니다. 저의 평생 추억이 될 것입니다.”

26세 컴퓨터 강사 장남석씨의 소원이 이뤄진 건 지난달 19일이었다. 프로야구 LG트윈스의 팬 게시판에 올려진 글 하나가 팬들의 입소문을 타고 퍼지면서 장씨의 애국가 연주를 요청하는 전화가 구단에 쇄도했다. 장씨는 잠실 LG-KIA전에 앞서 튜바를 들고 나와 애국가를 연주했다. 장씨는 태어나서 곧바로 인큐베이터 신세를 지다 산소과다로 인한 시신경 위축으로 실명했다고 한다.

장씨에게는 꿈 하나가 더 있다. LG트윈스 홈페이지는 자체 인터넷 방송을 통해 야구중계를 하고 있는데 장씨는 1일 객원해설자로 나서는 소망을 갖고 있다. LG 관계자는 “아직 날짜를 구체적으로 잡진 않았지만 이것과 관련한 논의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장씨의 애국가 연주는 ‘장애인의 날’에 맞춰 이뤄졌다. 냉정하게 말하면 구단 측이 이벤트 삼아 장씨를 초청한 것일 수도 있다. 장씨의 둘째 소망을 들어주고 안 들어주고는 물론 LG가 결정할 일이다. 안 들어줘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미국의 다음 사례를 보자. 시각장애인으로 메이저리그에서 10년째 해설을 하고 있는 이가 있다. 탬파베이 레이스의 스페인어 라디오 방송(제너시스 680AM) 야구 해설가 엔리케 올리우(47)다. 그는 지난해 월드시리즈 해설도 맡았다. 올리우는 대학을 졸업하고 스포츠와 관련된 일자리를 찾아 여러 곳의 문을 두드렸지만 문은 쉽게 열리지 않았다. 숱한 도전 끝에 그는 1989년 몬트리올 엑스포스(현 워싱턴 내셔널스)의 마이너리그 경기 라디오 해설가로 정식 데뷔했다. 아내 데비가 선수들의 움직임과 게임 상황을 말해주면 올리우의 해설이 이어지는 식이다. 경기 전 그는 그라운드로 내려가 꼼꼼한 사전 취재를 했다. 지역 청취자들 사이에 꽤 인기가 높다고 한다.

올리우에게는 독특한 능력이 있다. 비록 앞을 못 보지만, 시각 이외의 다른 감각을 최대한 살려 경기에서 다른 사람들이 놓친 것을 읽어내는 재주가 있다. 98년 탬파베이는 창단하자마자 그를 스페인어 해설자로 스카우트했다. 올리우는 힘들 때마다 아버지가 해준 말을 떠올린다고 한다. “밴드가 네 음악을 연주하길 원하는가. 아니면 네가 다른 사람 음악을 연주하길 바라는가. 네 결정에 달렸다.”

애국가를 연주하던 날, 장남석씨는 시구도 했다. 하지만 던진 공은 원바운드가 되어 타석으로 들어갔다. 야구공은 땅에 맞고 튀면 높이 솟지 못한다. 그러나 배트에 맞으면 홈런이 된다. 장씨의 꿈이 이뤄지길 기대해 본다. 혹시 아는가. 장남석씨의 해설이 폭발적인 인기를 끌지, 그래서 컴퓨터 강사에서 전업한 한국 최초의 시각장애인 야구 해설가가 될지.

김성원 JES 스포츠2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