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당선자 비자금 수사]'미완의 수사' 남은 의문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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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지난해 10월 대선을 앞둔 시점에서 터져 나와 정국에 엄청난 파장을 불러일으켰던 김대중 (金大中) 대통령당선자 비자금 의혹 사건이 23일 검찰의 수사결과 발표로 일단락됐다.

그러나 검찰이 스스로 인정하듯 이번 사건은 출발부터 '정치적' 인 배경에서 비롯된 까닭에 수사진행과 법률적용 또한 '정치적' 인 방식으로 매듭지어질 수밖에 없었다.

특히 사건 당사자의 신분이 야당총재에서 대통령당선자로 바뀐데다 국제통화기금 (IMF) 체제라는 초유의 국가적 위기를 겪고 있는 경제상황을 고려하면 이번 수사는 처음부터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 검찰의 설명이다.

이같은 한계에다 대통령 취임식 이전에 수사를 끝내야 한다는 시간적 제약과 사건 관련자들의 조사 불응 등이 겹쳐 검찰은 이번 사건의 완벽한 진실을 규명해 내지는 못했다.

박순용 (朴舜用) 중수부장이 수사결과 발표후 “모범답안은 아니지만 대략의 윤곽을 그려낸 것으로 만족한다” 고 자평 (自評) 한 것도 이같은 사정을 염두에 둔 것으로 분석된다.

그러나 이같은 검찰의 자평에도 불구하고 비자금부분에서는 여전히 몇가지 의문점이 남는다.

첫째, 과연 金당선자는 기업인들로부터 직접 돈을 받지 않았을까 하는 점이다.

검찰수사는 한결같이 돈은 평민당 의원들이 받았고 金당선자는 사후보고만 받은 것으로 돼 있다.

이에 대해 검찰은 “당시 야당총재였던 金당선자가 기업인들로부터 직접 돈을 받는 게 사실상 불가능했다” 고 해명하고 있다.

두번째 의문은 '20억원+α' 설 관련으로 노태우 (盧泰愚) 전대통령의 비자금 계좌에서 빠져나간 1억원짜리 수표 3장이 평민당 사무총장 계좌에 입금됐으나 누가 입금시켰는지를 모른다는 부분이다.

물론 盧전대통령 등 관련자들이 수사에 협조하지 않았다는 어려운 점도 있었지만 이같은 대형사건 수사에서 불과 몇년 전의 입금자를 밝혀내지 못했다는 것은 쉽게 납득할 수 없는 부분이다.

이 때문에 1억원짜리 수표 3장이 입금됐는데도 당시 사무총장이 입금자를 모른다고 주장한 것은 증거가 명백한 이 부분에서 입금자를 모른다는 설명은 金당선자를 끌여들이지 않으려한 검찰과 당사자들의 고육지책 (苦肉之策) 으로 보는 분석도 있다.

세번째 의문은 '20억원+α' 설 부분에서 청와대 경호실 발행의 자기앞수표 3천만원이 金당선자의 처조카인 이형택씨가 관리하는 계좌에서 발견됐다는 점이다.

검찰은 이 부분 역시 盧전대통령으로부터 돈을 받았다는 증거가 없다고 설명했다.

이밖에도 평민당 의원들이 받은 돈의 대가성은 없었느냐도 의문으로 남는다.

때문에 검찰수사 결과는 언제든 또다시 불거져 나올 불씨를 안고 있는 셈이다.

또 검찰이 사실과 다르다고 판단한 비자금 내역중 상당액은 엄밀히 따지면 “증거가 없어 더이상 수사가 어렵다” 는 결론에 가깝다.

오랜 시간이 지나 상당수 계좌의 추적이 불가능해졌거나 관련자들이 검찰조사에 협조하지 않아 미처 밝혀내지 못한 대목이 많기 때문이다.

또 비자금 계좌추적 작업에 대한 수사에서도 미흡한 부분이 있다.

청와대 배재욱 (裵在昱) 사정비서관이 단독으로 계좌추적을 주도했는지, 아니면 裵비서관에게 계좌추적을 지시한 상급자가 있는지의 여부는 이번 수사에서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결국 권력의 심장부인 청와대 사정비서관이 국가기관을 동원, 야당총재의 예금계좌를 뒤진 불법행위에 대해선 그 배경을 캐내지 못한 것은 물론 정치적 고려에 의해 관련자를 처벌하지도 못한 채 사건을 마무리하고 말았다.

예영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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