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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취재일기

자원외교, 첫 단추는 잘 뀄는데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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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이명박 대통령이 자원강국인 중앙아시아 2개국 방문을 마치고 14일 귀국한다. 방문 내내 이 대통령의 화두는 자원외교였다. 우즈베키스탄과 카자흐스탄 양국에서 이 대통령은 융숭한 대접을 받았다. 우즈베키스탄의 카리모프 대통령은 공항 도착 때부터 2박3일간 이 대통령의 모든 일정에 동행했다. 한국 기자들 사이에선 ‘24시간 밀착외교’, 심지어 ‘스토킹 외교’라는 조크까지 나왔다. 그는 즉흥 연설에서 “한국은 세계 반도체시장의 41%를 점유하며, 조선산업의 39%를 차지하고, GDP의 80%를 중소기업이 차지한다”며 각종 수치를 줄줄이 소개했다. 이 대통령은 “나보다 더 대한민국을 잘 안다”고 화답했다.

우즈베키스탄보다 콧대가 센 ‘중앙아시아의 맹주’ 카자흐스탄도 비슷했다. 나자르바예프 대통령은 과거 푸틴 전 러시아 대통령 정도만 경험했던 ‘사우나 회동’으로 이 대통령을 접대했다. 카자흐스탄은 이 대통령의 취미를 사전에 파악해 두 정상이 함께 테니스를 치는 이벤트를 제안하기도 했다.

지난 3월 중앙아시아를 중시하겠다는 ‘신아시아 외교구상’을 천명했던 이 대통령 역시 상대방 못지않게 적극적이었다. 시간 낭비에 질색하는 평소와 달리 유적지인 우즈베키스탄 사마르칸트 시찰에 7시간 이상을 할애했다. 이 대통령은 “무턱대고 ‘우리가 기술을 투자할 테니 자원을 내놓으라’고 하면 좋아할 사람이 아무도 없다. 내가 사업을 해보니 어떤 일이든 인간적인 교감이 우선”이라고 말해 왔었다. 러시아 방문길에 잠깐 들렀던 과거 대통령들과 달리 이 대통령이 두 나라를 단독으로 방문한 것이나, 개인적 친밀감 쌓기에 많은 시간을 투자한 배경이다.

자원외교의 성과를 내기 위한 주변 여건은 무르익고 있다. 정상들 간의 스킨십이 공고해지는 사이 양측 간 문화교류도 점증되고 있다. 중앙아시아엔 한류 드라마의 열풍이 불고, 서울에선 중앙일보가 주최하는 ‘중앙아시아 문화 특별전’이 열리고 있다.

특히 우즈베키스탄이 “실크로드의 중심이던 과거의 영화를 재현하자”며 추진 중인 나보이공항 주변 물류 허브사업은 우리 기업인 대한항공이 주도하고 있다. 이 대통령이 “21세기 신실크로드를 함께 만들어 나가자”는 화두를 던진 것도 우즈베키스탄의 ‘물류 허브 꿈’을 지원하는 반대급부로 자원외교 분야에서 실리를 얻겠다는 접근이다.

청와대는 이번에 에너지·자원 분야에서만 12건의 양해각서와 계약이 체결됐다고 홍보했다. 하지만 지난 정부에서도 그 정도 결과는 있었다. 자원의 보고인 중앙아시아·아프리카 각국들과 수많은 양해각서를 체결하고도 사후 관리를 잘못해 휴지조각으로 만들어 왔던 게 문제였다. 정상 간의 스킨십도 중요하다. 하지만 이젠 5, 10년 뒤의 가시적 성과를 위한 꼼꼼한 후속 조치와 집요한 관리에 매진할 때다.

서승욱 정치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