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이 어제 수도이전 반대 움직임에 대해 "대통령에 대한 불신임 운동.퇴진 운동으로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의 명운과 진퇴를 걸고 행정수도 이전을 성사시키겠다"고 한 지난달 발언보다 훨씬 노골적이다. 노 대통령이 이런 발언을 되풀이하는 바람에 이제 수도이전은 정책적 문제가 아니라 정치적 문제로 변질돼 버렸다. 건강한 토론과 여론 수렴의 길도 막혔다. '수도이전 찬성=노 대통령 지지, 반대=노 대통령 불신임'으로 규정된 마당에 어떤 의견인들 순수하게 보일 리 있겠는가.
노 대통령이 수도이전 문제를 정치투쟁으로 몰아가는 이유는 무엇인가. 노 대통령이 이런 극단적 발언을 할 때는 정치적 목적이 숨어 있었다는 것을 많은 국민은 경험으로 알고 있다. "대통령직 못해먹겠다" "국민에게 재신임을 묻겠다"는 등의 충격적 발언을 국민은 여러차례 들어왔다. 위기국면을 맞을 때마다 불쑥불쑥 튀어나온 노 대통령의 발언은 지지세력의 결집으로 이어져 상당한 정치적 효과를 봤다. 어제 발언도 이런 정치적 계산에 따른 것이 아닌지 의문이다.
노 대통령이 수도이전을 놓고 주요 신문사를 비난한 것도 말이 안 된다. '서울 한복판 정부 청사 앞에 거대 빌딩을 가진 신문사들'이 행정수도 이전 반대여론을 주도하고 있다니 수도이전과 신문사 건물이 무슨 관계인가. 노 대통령이 보수언론 타령을 하면 곧바로 친노 네티즌과 친노 언론들이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는 광경은 지겹도록 봤다.
우리는 올 하반기부터 수도이전 문제로 나라가 또 한차례 정치적 대결의 소용돌이 속으로 빠질 수 있는 단초를 대통령 스스로가 만들고 있는 데 대해 우려를 표시한다. 이제 수도이전 문제로 친노.반노세력이 맞붙고, 신임.불신임이냐를 놓고 나라가 어지러워질 것이 불을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대통령은 왜 이런 정치적 소란을 불러일으키려 하는가. 자신의 정치적 입지만 생각해 나라는 혼란에 빠져도 괜찮다는 말인가.
그는 또 "행정수도 이전문제를 놓고 수십번 토론했는데 언론이 본체만체했다"고 불만을 표시했다. 가장 큰 책임은 대통령에게 있는데 어떻게 언론 탓을 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사회 원로 130여명이 어제 "수도이전은 국민적 합의가 마련된 뒤 추진돼야 한다"는 성명서를 냈다. 대통령의 논리대로라면 이들은 대통령 퇴진운동을 벌이는 것이 되지 않겠는가.
지금에라도 "최선의 방책이 무엇인지 원점에서 토론하기 위해서라도 정부는 졸속 추진을 잠정 중단해야 한다"는 원로들의 제안을 노 대통령이 받아들이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