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외펀드 파문 확산 실태… 금융계 곳곳 파생상품 지뢰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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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빙산의 일각. ' 증권업계에서 JP모건과 SK증권의 파생금융상품 법정공방을 두고 하는 말이다.

최소한 10여개의 금융기관이 JP모건과 파생상품 거래를 했지만 단지 SK증권은 계약 만기일이 빨라 문제가 불거진 경우라는 것이다.

지금은 '신뢰도 손상' 을 이유로 금융기관마다 거래사실을 숨기고 쉬쉬하고 있지만 시간이 지나 거래내역이 제대로 밝혀지면 손실액도 눈덩이처럼 불어날 것이란 지적이다.

흉흉한 소문은 끝이 없다.

모건측이 종금.투신.은행.증권 등 금융기관들과 계약을 맺은 파생상품 펀드가 수십개에 이르고 동남아 통화위기로 펀드당 2천만달러씩, 최소한 수십억 달러의 손실이 났다는 것이다.

심지어 40억 달러의 손실을 입었다는 얘기도 돈다.

그렇다면 왜 국내 금융기관들은 이처럼 위험이 큰 파생상품 거래를 하게 됐을 까. 지난해 초 JP모건의 자회사인 모건 개런티측이 문제가 된 파생상품거래 (TRS) 를 들고 나왔을 때 국내 금융기관들은 이 상품을 '못 사서 안달' 이었다는게 당시 계약을 체결했던 담당자들의 말이다.

증시침체와 저금리로 몸살을 앓고 있던 국내 금융기관들로선 달러를 차입해 당시 국제적으로 고금리였던 인도네시아 루피아화 채권에 투자하되 일본 엔화와 태국 바트화를 연계함으로써 위험을 쉽게 줄일 수 있다는 모건 개런티의 상품설명에 귀가 솔깃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계약에 참여했던 모증권사 간부는 "태국 바트화가 하락하지만 않으면 앉아서 당시 연2%로 가장 쌌던 엔화와 국내 금리 (당시 채권수익률 12%) 와의 차이인 10%포인트 가량의 고수익을 챙길 수 있다는 유혹을 누가 뿌리칠 수 있었겠냐" 며 "수익악화로 전전긍긍하던 국내 금융기관들에겐 단비와도 같은 상품이었다" 고 말한다.

JP모건측은 이 상품을 판매할 당시 동남아에 대한 과잉투자로 몸살을 앓고 있었다.

실제로 97년 4분기에 모건은 35%의 수익감소를 겪었다.

동남아 투자에서 손실이 컸기 때문이다.

바트화 또는 루피아화와 연계된 금융상품을 잔뜩 안고 있었던 JP모건측은 어떻게든 이 상품들을 처분해야 했을 것이다.

이를 처분하기 위해 문제가 된 TRS거래방식을 만든 것이 아니냐는 '의도적 떠넘기기설' 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SK증권 등과 맺은 JP모건의 TRS의 계약내용을 들여다 보면 이같은 심증이 더 확실해진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바트화 상승시 국내 금융기관이 얻을 수 있는 수익은 투자원금 정도인 5천3백만달러를 넘을 수 없는 반면, 반대로 바트화가 하락할 경우는 무한대로 물어내야 하는 형태였다는 것이다.

게다가 지난해 바트화가 폭락끝에 변동환율제로 바뀌면서 TRS의 위험회피기능이 거의 없어졌으나 JP모건측은 조기청산을 요청한 한남투자증권측에 바트화의 추가하락이 없을 것이란 내용의 팩스를 보내면서 안심시켰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국내 금융기관에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우선 이 '위험한 거래' 를 하면서도 사전.사후관리가 소홀해 결과적으로 손실을 키웠다는 점이다.

이외에 ▶파생상품 구성과 투자위험에 대해 정확히 예측.인지할 만한 국내 전문가가 거의 없었으며▶투자 결정도 소수의 임원과 담당자에 의해 이루어 졌고▶금융당국이 이를 관리할 효율적인 감독체계를 갖추고 있지 못했다는 점이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이정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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