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남북한의 언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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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눕' 의 원형을 가진 누이 (姉) 라는 단어가 지역마다 어떻게 변천하는가를 보여주는 학계의 분석은 매우 흥미롭다.

우선 한반도 중.북부지방에서는 '누비' 로, 남부지방에서는 '누부' 로 변한다.

'누비' 는 중.북부의 북쪽에서는 그대로 남게 되지만 함흥 일대에서는 '뉘비' 로 변하며, 중부에서는 '누이' (서울과 황해도 일부지역). '뉘' (공주와 영동지역). '누의' (서천과 홍성지역) 로 갈라진다.

한편 남부지역의 '누부' 는 울산.동해.김해 등지에서는 그대로 존속하지만 거제.진주지방에서는 '누우' 로, 여수.곡성.남해 등지에서는 '누' 로 변한다.

특히 남해의 일부 지역에서는 '눙이' 로 표현되기도 한다.

이 분석에 따르면 '누이' 라는 단어가 최북단에서는 '누비' 로, 최남단에서는 '누우' 혹은 '눙이' 로 표현되니 상당한 차이를 보이는 셈이다.

이것이 '지역 방언' 의 대표적인 예라고 한다.

이를테면 함경도 방언을 쓰는 사람과 제주도 방언을 쓰는 사람 사이에 의사소통이 반드시 자유롭게 이뤄지리라는 보장이 없는 것은 지역 방언이 심화된 탓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지역 방언보다 더 언어를 이질화시키는 것이 '사회 방언' 이다.

사회 방언은 사회계층의 차이에서 비롯되기도 하지만 세대차.성별.종교 등의 요인에 의해 생겨나기도 한다.

북한 같은 폐쇄된 사회에서 특히 사회 방언의 발생소지가 높다.

북한에서 대중사회의 은어 (隱語) 들이 일상어로 정착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똑같은 한 (韓) 민족을 대해야 하는 외국사람들로서는 남북한 언어의 차이가 심할수록 곤혹스러울 것이다.

예컨대 남한의 장인.장모가 북한에서는 가시아버지.가시어머니로 표현되는 것을 외국인들이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북한의 소위 '문화어' 를 교재로 써오던 중국 각 대학의 조선어과들이 96년 초부터 교재를 우리의 '표준어' 로 바꾼 것도 북한어가 한민족 언어로서의 대표성을 갖지 못한다는 판단에서였을 것이다.

최근 서울대 교수와 북한 혜산사범대 교수가 공저 (共著) 로 '남북한 언어 비교연구' 란 책을 내게 된 것도 두 교수가 90년 폴란드 바르샤바대 초청교수로 한국어와 조선어를 가르치던 중 두 말이 너무 다르다는 학생들의 불만이 계기였다고 한다.

언어의 이질화를 좁혀나가는 작업 역시 통일의 초석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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