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안 월 스트리트 저널]베트남 경제도 찬바람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8면

베트남의 '테트 (음력 설날)' 경기가 예전 같지 않다.

도시와 농촌을 막론하고 테트가 다가오면 사람들은 전기밥솥부터 시작해 코코넛 사탕까지 쇼핑을 즐기느라 분주했다.

베트남에서 테트는 국가적 축제일 뿐만 아니라 경기 상태가 어떤지를 말해주는 척도이기도 했다.

하지만 올해는 경기 침체로 인해 쇼핑 규모가 대폭 줄었다.

“동남아 경제위기가 곧 베트남으로 번질 것이라는 우려가 확산되자 사람들이 지갑을 열려 하지 않는다” 고 시장조사업체인 SRG베트남의 응구엔 린 이사는 말한다.

불확실한 경기 전망이 소비성향을 억제하고 있다는 얘기다.

군에서 퇴역한 뒤 메콩강변에서 과수원을 하고 있는 마이 캡씨는 “쇼핑할 수 있는 돈이 지난해 만큼 많지 않다.

모든 게 풍족했던 과거의 테트가 아니다” 며 불평을 털어놓았다.

특히 쌀 수출이 줄어들면서 인구의 80%를 차지하는 농민들의 고통이 심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농가 수입이 줄어들 경우 농민계층의 지지에 힘입어 오랫동안 안정을 누려왔던 정치권에도 불안을 던져줄 수 있다.

실제로 타이 빈과 동나이 시에서는 최근 높은 세금과 공직자 부패에 항의하는 시위가 일어나 농민들 사이에서 불만이 고조되고 있음을 시사했다.

응구엔 린 이사는 “호치민 (옛 사이공) 의 호텔이나 유흥업소에서 일했던 농촌출신의 종업원들이 고향에 돌아가 외국인 투자가들의 철수와 경기 침체 등 나쁜 소식들을 농민들에 전하고 있다” 고 설명했다.

외국인 투자기업의 철수 등으로 실직자가 거리에 넘쳐나는 등 호치민 시내는 이미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

실직뿐 아니라 소비심리도 완전히 위축돼 있다.

일본 혼다의 한 딜러가 “지난 96년 테트 주간에는 하루 3~4대의 오토바이를 팔았으나 올해에는 3~4일에 한 대라도 팔면 다행” 이라고 말할 정도다.

오토바이 뿐만 아니라 가전제품등 일반 소비재도 매출이 급감하고 있다.

델타 지방의 농민들이 쇼핑하러 오는 호치민시 차이나타운의 경우 지난해에 비해 전기 밥솥과 TV.선풍기등의 매출이 절반으로 줄었다.

수입 제품에 대해 높은 관세를 물려 달러 유출을 막으려는 베트남 정부의 시도도 고물가를 초래하면서 테트 불경기에 일조하고 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