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하루 먹고살기 급급한 저소득층에게 저축은 한없이 사치스러운 일처럼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그날 벌어 그날 쓰고 사는 인생엔 희망이 없다. 어제와 같은 오늘, 또 오늘과 같은 내일이 있을 뿐 형편이 더 나아지리라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서울시가 지난해 초 ‘희망 플러스 통장’ 사업을 시작한 건 그래서다. 저축 습관이 배어 있지 않은 저소득층에게 의욕을 북돋워 주고자 가입자가 일정액을 저금하면 후원기관이 똑같은 액수를 보탠 뒤 이자까지 붙여 돌려주도록 했다.
통장은 돈이 불어난 것 이상의 마법을 부렸다. 사업이 망한 뒤 별수 없이 운전대를 잡은 택시 기사는 개인택시를 가질 꿈에 부풀어 신바람이 난다고 했다. 기초생활수급자인 가장은 월세를 전세로 바꾸겠다는 희망에 차 불편한 몸을 이끌고 열심히 일한다고 했다. 통장 하나가 실의와 절망에 빠져 있던 소외 계층에게 굳건한 자립·자활의 의지를 심어준 것이다. 초기에 100가구를 모집했는데 반응이 이처럼 좋아서 올 3월 1000가구를 추가로 뽑았고, 연말까지 1만 가구로 늘릴 예정이라 한다.
저소득층에게 저축 습관을 들여주는 것만큼 효과적인 빈곤 대책도 별로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예산으로 당장 필요한 생계비를 대줘봤자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일 뿐 빈곤의 고착화나 대물림 문제를 풀 수 없기 때문이다. 미국 40여 개 주에서 수년 전부터 ‘개인발달계좌(IDA)’ 프로그램을 도입한 이유다. 저소득층이 저축을 하면 매칭 펀드를 끌어들여 두 배, 세 배로 불려줬는데 빈곤 탈출의 의지가 커지고 자녀 교육열이 높아지는 등 효과가 컸다고 한다. 서울시의 ‘희망 플러스 통장’이 바로 이 IDA를 벤치마크한 것이다. 그런데 우리 프로그램이 성공적으로 정착하자 IDA 측에서 되레 공동 연구를 제안하는 등 최근 국제적으로 관심 대상이 되고 있다고 한다.
경제 위기로 중산층에서 가난의 나락으로 곤두박질친 신빈곤층을 어떻게 구제할지가 우리 사회의 큰 숙제로 대두한 즈음이다. 이들을 다시 중산층으로 복원시키자면 생계 지원 못지않게 자산 형성 지원 정책도 병행할 필요가 있다. ‘희망 플러스 통장’이 희망의 싹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