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사랑의 리퀘스트' 서민들 정성 쏟아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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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주부 임현옥 (35.전북전주시완산구효자동) 씨는 매주 토요일 저녁이면 9살.6살 두 자녀와 함께 TV앞에 앉는다.

KBS1 '사랑의 리퀘스트' 를 보기 위해서다.

프로그램에서 소개되는 어려운 사람들의 사연에 눈시울이 뜨거워지면 임씨는 전화기를 든다.

“아이들이 먼저 '저 사람들 좀 도와주자' 고 해서 전화를 거는 때도 많아요.” 그가 전화를 한통 걸면 사연이 소개된 사람들에게 1천원이 전해진다.

그 돈은 나중에 임씨의 전화요금에 함께 부과된다.

한 달에 3번쯤 '사랑의 리퀘스트' 에 전화를 한다는 임씨. 그래서 매달 전화통화료에 3천원 정도를 더 보태 내야하는 그는 남편과 두 아이와 함께 8만원짜리 단칸 사글세방에 산다.

주부 이영숙 (32.대전대덕구문정동) 씨도 '사랑의 리퀘스트' 의 단골 참여자. “남편이 조그마한 사업을 하는데 불황으로 사정이 어렵다” 는 이씨는 “그래도 우리보다 더 어려운 사람들의 애절한 사연을 지켜보면 도와야겠다는 마음이 생긴다” 고 말한다.

'사랑의 리퀘스트' 에 소시민들의 정성이 쏟아지고 있다.

매회 걸려오는 20만 통이 넘는 전화 중 대부분이 임씨나 이씨 같은 서민층이라는 게 제작진의 설명이다.

연출자 전진국PD는 “참여계층을 정확히 파악할 수는 없으나 시청자들로부터의 전화를 받아보면 생활이 넉넉지 않은 사람들이 대부분인 것 같다” 고 말했다.

이처럼 '사랑의 리퀘스트' 가 서민들의 커다란 호응을 받는 비결은 '1천원' 이라는 부담적은 액수와 '전화' 라는 편리한 수단. 바로 눈앞에서 가슴 저린 사연을 보여주고 전화 한통만 하면 그 자리에서 사연의 주인공들을 도울 수 있도록 한 것이 '나보다 더 어려운 사람도 있구나' 하는 서민들의 동정심을 자극했다는 분석이다.

한 시청자는 PC통신에 “1천원으로 이웃을 도울 수 있다는 게 정말 기쁘다.

그간 어려운 사람들을 돕고는 싶었지만 적은 돈을 내밀기가 부끄러워 못하고 있었다” 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시청자들의 호응이 뜨겁다보니 제작진에게 고민도 생겼다.

'도대체 전화가 연결되지 않는다' 는 시청자들의 불만이 그것. 제작진은 처음 방송이 시작될 때 편당 2만 통 정도의 전화를 예상하고 전화 1천5백 회선을 준비했으나 최근에는 4천5백 회선까지 늘린 상태다.

권혁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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