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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수사관련 국민 알 권리 보장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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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법무부가 '인권보호 수사준칙' 개정안을 준비 중이다. 검찰과 경찰의 수사단계에서 발생하는 인권침해 의혹이 줄어들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부터 시행된 '수사준칙'은 총 35개 조항으로 구성돼 있다. 피의자 인권보호를 위해 검찰과 경찰이 지켜야 할 규칙을 명시하고 있는데 그 핵심내용은 가혹행위 금지, 변호인 접견 보장, 자백 중심의 수사 지양 등 수사담당자들이 피의자에게 가하는 인권침해를 예방하는 조항들이다.

현행 수사준칙 제6조는 검사가 기소 전에 피의사실을 공표하거나 체포영장, 구속영장, 압수.수색영장 등의 내용을 외부에 유출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언론보도로 인한 피의자의 명예와 사생활 침해를 막기 위한 조항이다.

그런데 법무부가 최근 제시한 수사준칙 개정안에 따르면, 앞으로는 수사관련 피의사실, 피의자의 소환 여부 등 수사상황도 공개하지 않겠다고 한다. 만약 준칙이 이렇게 개정된다면 범죄수사에 관한 언론의 보도는 많은 제약을 받을 것이다.

피의사실 공표는 이미 현행법으로도 금지된 사항이다. 헌법 제27조는 형사피고인에 대한 무죄추정의 원칙을 천명하고 있고, 형법 제126조는 검사나 경찰관이 피의사실을 공판청구 전에 공표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그러나 피의사실 공표가 전적으로 금지된 것은 아니다. 국민의 알 권리도 보장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범죄수사기관은 "원칙적으로 일반 국민의 정당한 관심의 대상이 되는 사항에 관해 객관적이고도 충분한 증거나 자료를 바탕으로 한 사실 발표"를 할 수 있다고 대법원은 거듭 판결해 왔다.

범죄수사가 국민의 알 권리에 해당하는 이유는 크게 세 가지다. 첫째, 법치질서의 파괴자를 응징함으로써 사회질서가 유지되는지 확인하고, 둘째, 범죄관련 정보를 입수해 피해를 당하지 않도록 사전에 대비하며, 셋째, 국가가 형벌권을 남용하지 못하도록 감시하기 위해서다.

한국은 세계적으로 드물게 범죄로부터 안전한 국가다. 그러나 법치주의에 대한 국민의 신뢰는 매우 미약한 실정이다. 그 주된 원인은 검찰과 경찰에 대한 국민의 불신 때문이다. 권위주의 시절의 수사 관행이 여전히 잔존하면서, 불공정수사.가혹행위에 대한 의혹이 끊이지 않고 있다. 피의자의 구속수사가 아직도 원칙이나 다름없고, 강요된 자백이 증거로 인정되며, 변호인 접견 권리마저 많은 제약을 받고 있는 현실에서 검찰이나 경찰의 인권침해 소지는 상존할 수밖에 없다.

국민의 인권보호를 위해 사법개혁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지만, 선진국과 같이 검찰을 감시하고 견제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아직은 마련되지 못하고 있다. 검찰이 권력과 유착하거나, 검찰이 형벌권을 남용해도 이를 예방할 방도가 없는 것이다. 결국 언론을 통해 국민여론에 호소해야만 사법적 정의가 실현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물론 언론의 범죄관련 보도가 피의자와 그들 가족의 인권을 침해하는 경우가 많았던 것도 사실이다. 지나친 속보경쟁에 휘둘려 피의자를 성급히 단죄하고, 수사기관을 감시하기보다 오히려 홍보수단으로 이용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그로 인해 검찰 수사의 언론보도와 동시에 피의자가 범죄자로 취급받는 것이 한국의 현실이기도 하다.

그러나 현 상황에서 정부가 피의자 인권보호를 위해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는 언론보도로 인한 인권침해가 아니다. 언론보도로 인한 사생활침해나 명예훼손은 법적 소송을 통해 구제받을 수도 있다. 시급한 것은 수사기관에서 피의자들에게 가해지는 인권침해 의혹을 불식하는 일이다.

검찰에 대한 국민의 철저한 감시, 그것만이 검찰이 '권력의 시녀'라는 오명을 완전히 벗고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는 길임을 법무부는 유념해야 할 것이다. 검찰의 불합리한 수사관행에 대한 언론의 감시와 비판은 더욱 철저히 보장하되, 피의자의 명예나 사생활을 적절히 보호하는 합리적인 개정안을 기대한다.

장호순 순천향대 교수.언론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