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장 외국작품 환차익 돈급해 내놓지만 씁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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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6면

국제 미술시장에서 '봉' 소리까지 듣던 '물좋은' 한국이었지만 갑자기 밀어닥친 환란 (換亂) 으로 외국작품을 구경하기가 어려워졌다.

두배 가까이 올라버린 비용을 감당할 수 없어 화랑은 물론 미술관조차 외국작가 전시를 주저하고 있다.

자연히 화랑들의 외국작품 판매는 이제 '물건너간 일' 이 돼버렸다.

하지만 모든 일에는 명암 (明暗) 이 함께 있는 법. 이같은 상황에서 외국작품 덕에 모처럼 옅은 미소를 짓는 화랑들도 있다.

지난 몇년동안 외국작가 전시를 꾸준히 해오며 꽤 많은 컬렉션을 갖게된 화랑들이다.

아트컨설팅 코팩과 가나화랑.국제화랑 등이 대표적. 이들은 미국과 유럽 미술시장 침체기에 외국 유명작가의 작품을 사모았던 화랑들이다.

전시 후 재고 (在庫) 로 안고 있었던 바로 이 작품들이 요즘 '얄미운' 효자노릇을 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작품 거래가 거의 끊기다시피한 반면 외국에서는 한국 경제위기를 틈타 작품구매를 의뢰해 오고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거래해오던 외국 화상들이 직접 거래를 요구해오는 경우도 있고, 세계 양대 경매회사인 소더비와 크리스티처럼 화랑들을 찾아다니며 경매 매물을 싼값에 내놓으라고 권유하기도 한다.

도날드 저드와 프랭크 스텔라.브루스 노먼.알렉산더 콜더.후앙 미로 등 인기작가들의 작품들은 이미 외국화상들 손에 들어가 있거나 경매날을 기다리고 있다.

대부분 미국과 유럽 미술시장 불황기에 저렴한 가격으로 사들인 것들로 작품소장 자체가 어느 면에서는 국내 미술시장의 보이지 않는 힘으로 작용했을만큼 질 높은 작품들이다.

서구 시장경기가 살아나고 국내 시장이 불황을 맞으면서 이제는 그때와 정반대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우리가 사들인 가격보다 낮은 가격으로 팔라고 종용받는 상황을 맞은 것이다.

그래도 옅은 미소를 띠게 되는 것은 환차익 때문. 8백원대 환율이 유지될 당시 10만 달러를 주고 사온 작품을 지금은 그 3분의 2수준인 7만 달러에만 되팔아도 원화로 계산하면 오히려 2천~3천만원의 이익이 남기 때문이다.

경기 좋던 시절에 사들인 국내 대가 작품들을 본전에 되팔기도 어려운 현상황에서 오히려 남는 장사를 할 수 있으니 그야말로 뜻하지 않은 장사밑천이 돼주는 셈이다.

그렇지만 마냥 웃고 있을 수만은 없는 남모르는 사정도 있다.

지금은 워낙 돈이 급해 원화로 이익을 남기면서 팔고 있지만 그정도 작품이라면 어차피 나중에 전시하든 판매하든 다시 들여와야 할 작품들이기 때문이다.

아트컨설팅 코팩 홍송원 사장은 "사올 때와 되팔 때 환율을 고려해 가격을 단순비교하면 남는 장사로 비칠 수도 있지만 한번 장사하고 화랑 문을 닫지 않는 이상 장기적인 안목에서 보면 이익이라고만 할 수 없다" 고 한데는 바로 이런 뜻이 담겨 있다.

경제위기속에 활로가 꽉막힌 것처럼 화랑들이 속수무책으로 앉아있는 상황에서 억울하긴 해도 내다팔 수 있는 작품이 있다는 점에서 이들 화랑이 보다 나은 형편에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안혜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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