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은행 자율경영은 제도화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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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김대중 (金大中) 대통령당선자가 국민회의 의원들에게 은행장 인사에 개입하지 말라고 지시한 것은 은행의 자율경영풍토 확립을 위해 환영할 일이다.

여기서 그치지 말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은행의 자율경영이 확립되려면 권력에 의한 인사개입이 구조적으로 차단되도록 제도와 관행을 정비하는 것이 필요하다.

은행은 수익성을 추구하는 점에서는 일반기업과 같으나 공익성이라는 잣대에서 보면 건전성에 대한 감독을 받아야 하는 특별한 측면이 있다.

이 점에서 은행에 대한 정부 혹은 정치권력의 개입 여지는 상황 여하에 따라 얼마든지 생겨난다.

왜냐하면 은행은 막대한 자금배분의 통로이기 때문이다.

金당선자측이 현재 진행중인 대기업의 구조조정과는 별도로 은행의 경영주체를 심도 있게 논의하지 않고 있는 것은 문제다.

물론 IMF와의 합의에 따라 부실종금사와 은행을 처리하는 현안 때문에 미처 은행의 구조조정은 신경쓸 겨를이 없을지 모른다.

그러나 대기업의 구조조정과 은행의 구조조정은 동전의 양면처럼 떼어놓을 수 없는 관계다.

앞으로 시장원리에 입각해 대기업이 투명한 경영을 하도록 유도하려면 결국 기업이 은행과 주식시장에 의해 경영감시를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자면 은행이 스스로의 결정에 책임지는 경영주체가 있어야 하며 그 기본은 역시 주주에게 두어야 하는 것이 시장원칙에 맞는다.

아무리 경제력집중에 대한 고려가 중요하다고 해도 주주를 무시하고 현행대로 이사회를 구성한다면 정부나 정치권력의 입김은 언제라도 스며들 수 있다.

만약 하나의 기업이 은행을 소유하는 것이 국민정서상 받아들여질 수 없다면 국내외 기업 가리지 말고 현재 규정보다 상향조정된 20% 전후까지 소유상한을 높이고 4~5개의 대주주군이 구성될 수 있게 하는 방안도 검토해봐야 한다.

대주주에 대한 편중대출로 인한 '은행의 사금고화' 가능성은 엄격한 대출관리규정에 근거해 금융감독기구가 감시하면 될 일이다.

또한 은행의 부채 일부를 주식으로 전환해 은행과 기업관계를 재정립하는 것도 검토해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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