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 행정조직 살빼기…'내사람 심기'에 설땅없는 고급두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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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청운의 꿈' 을 품고 95년 제1회 지방고등고시에 합격한 李모 (36).金모 (34) 사무관. 그러나 지난해 4월 대전 동구청과 중구청에 각각 발령받은 이들은 일년이 다 돼 가는데 아직도 보직을 받지 못하고 있다.

고시 출신이 전혀 없는 대전시내 구청에서 '고급 두뇌' 인 이들이 대접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 해당 구청에선 "마땅한 자리가 없기 때문" 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민선 구청장들이 이들을 탐탁해 하지않는 데다 구청 간부들이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저항하고 있기 때문이다.

95년 본격 지방자치제가 실시되자 내무부는 우수한 지방공무원을 양성한다는 취지로 지방고등고시제를 도입, 매년 시.도를 통해 각 지자체의 필요 인원을 요청받고 있다.

대전시내 5개구청도 지난해까지 3회에 걸쳐 모두 7명을 뽑았다.

하지만 고시출신들을 배당받은 구청장들이 한결같이 '지방고시 무용론' 을 주장하는 바람에 대전시는 어쩔 수 없이 올해는 '요식 행위' 로 한명만 뽑아주도록 내무부에 요청해 놓고 있다.

민선 자치시대 이후 대다수 지자체에서는 공무원 인사가 '동맥경화증' 에 걸릴 위기에 놓여있다.

단체장들이 인사권을 장악하면서 '내 사람 심기' 에 골몰한 나머지 외부의 유능한 공무원들을 받아들이지 않으려 하기 때문이다.

대전시내 모 구청장은 95년 부임 이후 공식석상에서 "내 인사기준은 능력보다는 충성도" 라고 공공연히 말해 공무원들의 줄서기를 부추겼다.

결국 민간기업이나 중앙부처에 비해 기본적으로 능력이 뒤지는 공무원들이 주류를 이루는 지자체가 외부의 유능한 인력까지 받아들이길 꺼린다면 지방행정조직의 발전은 기대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많다.

대전 = 최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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