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당선자·재계 합의 의미]'船團式 경영' 해체 선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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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한국경제의 '룰' 이 달라지게 됐다.

김대중 (金大中) 대통령당선자와 30대 그룹 총수가 6일 회동에서 합의한 내용들은 가위 혁명적이다.

대기업 총수들은 이제 '지배하지만 책임은 지지 않는' 상태에 더이상 머무르기 어렵게 됐다.

평시에도 '경영도 하고 책임도 지는' 형태가 예상된다. 金당선자측은 이번 합의도출을 아주 정교하게 추진해 왔다.

회동 일자를 6일로 잡아놓고 노사정 (勞使政) 위원회에서 정리해고 합의타결에 총력을 기울였다.

노동계를 알 만한 당선자측 인사는 모두 투입됐다.

그리고 노사정위가 극적 합의를 이끌어낸 지 5시간 만에 金당선자와 총수들간의 회동이 있었고, '활발한 토론' 끝에 金당선자측이 제시한 '완벽한 책임경영제' 가 채택됐다.

노사정위 합의를 추력 (追力) 과 쐐기로 활용한 것이다.

“이번엔 재계가 양보할 차례” 라는 金당선자측의 요구를 거부할 분위기가 아니었다.

이번 합의문중 핵심조항은 지배주주 책임을 정관에 규정하기로 한 것. 총수들에게 계열사 대표이사에 취임하라는 요구다.

회장실.기조실 등 '사실상 지배조직' 도 폐지토록 했다.

총수들이 모든 계열사의 대표이사로 취임할지, 주력기업의 대표이사로만 취임할지는 선택사항이다.

金당선자측에서는 적어도 주력업종으로 선정한 3~4개 기업은 총수가 직접 맡아주길 희망하고 있다.

회장실.기조실 폐지의 파장도 만만치 않다.

순수 지주 (持株) 회사제의 도입이 늦춰진 상황에서 회장실.기조실이 폐지됨에 따라 과거의 '선단 (船團) 식 경영' 은 붕괴될 가능성이 높다.

비주력 계열사중 상당수는 정리되거나 각각의 최고 경영자가 경영의 총책임을 맡는 독립경영체제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金당선자측은 한편으로 기업 인수.합병 (M&A) 과 기업간 사업교환시 취득세.등록세를 면제키로 하는 등 재계의 요구도 상당부분 수용했다.

법 통과 이전 이미 매각한 자산에 대해서도 동일한 혜택을 주기로 했다.

金당선자측은 또 올 상반기중 상법이 개정돼 총수나 기조실 임원들이 기업경영의 법적 책임을 지는 '등기부 등재 (登載) 이사' 로 신분을 바꾸게 되면 명실상부한 책임경영체제가 확립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이같은 金당선자측의 계획이 기대했던 성과를 거둘지는 미지수다.

우선 이번 합의를 계기로 외국 자본 유입과 수출 확대 등 구체적 소득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날 노골적인 의시표시는 없었지만 일부 총수들은 “새 정부가 너무 서두른다” 는 생각도 갖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는데 안팎 여건이 제대로 맞아 떨어져 돌아가야 하는 金당선자측의 시도가 어떤 결과를 낳을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

김현종·이상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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