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세워두는 순찰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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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유류 (油類) 값이 큰 폭으로 오르면서 경찰의 112 순찰차 운행이 중단될 처지라고 한다.

지역별로 다르지만 대도시의 경우 순찰차 1대당 하루 20ℓ 정도씩 공급되던 휘발유가 14ℓ쯤으로 줄어드는 바람에 그만큼 순찰활동을 못하고 있고 전국이 거의 비슷한 실정이라는 것이다.

때문에 파출소에서는 순찰거리를 단축하거나 장거리 순찰은 가급적 피하고 있다고 한다.

또 일부 지역에서는 정시순찰을 못하고 신고가 접수돼 출동할 때에만 운행하는 등 방범활동에 큰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순찰차는 지난 90년 처음 배치된 이래 7년만인 지난해 10월 면 단위 파출소까지 보급을 끝내 전국에 3천6백여대가 운행되고 있다.

범죄신고에 따른 긴급출동과 기동순찰.목 검문 등 최일선에서 범죄예방 활동을 도맡아 짧은 기간에 '경찰의 발' 로 자리잡았고 시민들에게는 민생치안의 상징으로 친숙해진 상태다.

특히 강.절도 전과자들 사이에서는 범죄대상을 물색하러 다니다가 순찰차가 지나가는 것을 보게 되면 '재수없는 날' 이라고 범행을 포기하는 미신이 불문율 (不文律) 처럼 전해지고 있다지 않은가.

이런 점에서 순찰차의 운행 축소나 중단은 바로 그만큼 치안공백을 초래할 것이 분명하다.

특히 지금은 IMF시대를 맞아 실직자가 크게 늘면서 좀도둑 등 생계형 범죄가 기승을 부릴 것이 명약관화 (明若觀火) 한 시점이다.

범죄는 날로 광역화.기동화되는 반면에 경찰은 오히려 발을 묶는 셈이니 순찰차 운행 축소는 곧 민생치안의 포기라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그러므로 국민의 생명과 재산보호 차원에서 순찰차 운행에 차질이 있어서는 안된다.

경찰청은 경찰관서의 행정차량 운행을 줄이고 순찰차의 유류를 우선 확보토록 긴급 지시했다지만 이는 미봉책에 불과하다.

당장의 부족분은 이번 추경예산에 반영해 처리한다 하더라도 장기적으로는 어떤 경우에도 순찰차만은 순조롭게 운행될 수 있도록 비상 예산의 확보 등 제도적인 뒷받침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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