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외환위기는 '내 책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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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외환위기의 정책적 책임에 대해 입을 다물고 있던 김영삼 (金泳三) 대통령이 드디어 '모두 내 책임' 이라고 공식 발표했다.

그동안 재경원과 한국은행이 서로 무책임을 주장하는듯한 태도를 취한 것에 비하면 金대통령의 책임 선언은 신선한 느낌을 준다.

그러나 감사원의 외환 특감이 진행 중이고 앞으로 청문회까지 열릴 상황을 감안하면 金대통령의 책임선언은 구체적으로 무슨 뜻을 지니고 있는지 보다 명확해져야 한다.

일부의 해석대로 경제각료의 문책을 막기 위한 엄호용이라면 그런대로 이해가 가나 외환위기를 초래한 원인의 사실 규명 자체를 말라는 뜻이라면 타당성이 없다.

김대중 (金大中) 대통령당선자도 외환위기 감사가 누구를 처벌하기보다 잘못의 원인을 밝혀 냄으로써 새 정권이나 후세에 교훈을 남기자는 취지임을 누차 강조했다.

우리도 거기에 동감한다.

조사 대상자들이 마치 피의자처럼 대접받으면 안된다.

그러나 국제통화기금 (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하기까지 외환사정이 악화됐고 그 지경에 이르기까지 사전에 아무 대책도 없었던 저간의 경위와 책임만은 분명히 밝혀져야 한다.

명색이 정부라면, 하루 아침에 경제주권을 유보 (留保) 당할 정도의 충격을 주고도 아무런 경위 설명이 없다는 것은 무책임하기 짝이 없는 짓이다.

金대통령의 책임선언에는 당국이 사태의 심각성을 알고도 '대통령의 체면이나 국가의 위신' 을 생각해서 IMF로 가지 않는 방법을 쓰려다 일이 잘못됐다는 투의 설명이 뒤따른다.

그렇다면 IMF로 가지 않고도 사태를 수습할 수 있다고 판단한 주체는 어디며 그런 오류의 책임은 어떻게 져야 하는지 규명돼야 할 것이다.

이미 96년말, 97년초부터 외환위기의 가능성을 경고하며 국제 금융기관의 협조를 얻어야 한다는 연구 보고서가 나왔는데 그 경고는 무시하다가 뒤늦게 대통령의 체면과 국가의 위신을 거론하는 것이 말이나 되는 소리인가.

대책 건의가 묵살당했다는 한은의 주장도 있고 보면 보다 책임있는 경위 설명이 뒤따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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