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남북합동 서커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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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아동문학가 방정환 (方定煥) 의 주도로 개벽사 (開闢社)가 1923년 3월호로 창간한 아동잡지 '어린이' 는 그 무렵 어린이들의 꿈이요, 희망이었다.

이 잡지는 최초의 창작 동요.동화를 싣는 등 한국 아동문학의 출발점으로 기록되거니와 특히 대중적 인기를 모았던 것은 20년대 후반에 연재됐던 모험소설 '77단의 비밀' 이었다.

이 소설은 한 모험심 많은 어린이가 곡마단에 유괴돼 혹독한 서커스훈련을 받다가 탈출한다는 줄거리다.

이 소설에대한 당시의 인기는 22년 이탈리아 서커스단이 서울 장충단에서 첫 공연을 가진 후 불기 시작한 서커스 붐과 무관하지 않다.

일제 (日帝) 의 서커스단들은 앞다퉈 내한공연을 가져 떼돈을 긁어갔고, 이들이 소년소녀를 유괴해 단원을 만든다는 소문이 나돈 것도 이 무렵이었다.

그런 사례도 없지는 않았겠지만 실제로는 가난한 부모들이 어린 자식을 팔아넘기거나 서커스를 동경한 어린이들이 고아를 사칭해 자발적으로 서커스단에 입단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예나 이제나 서커스단이 어린이를 선호하는 까닭은 '뼈가 굳기 전에' 훈련을 받아야 '훌륭한 곡예사' 가 될 수 있다는 철석같은 믿음 때문이다.

붕괴 이전의 공산권 국가들이 국책사업으로 어린 소년소녀들을 세계적인 체조선수로 키운 것도 같은 맥락이다.

특히 북한은 일찍부터 서커스에 해당하는 '교예 (巧藝)' 를 국가적으로 육성해 오고 있다.

50년 창립된 평양교예학교는 소질과 신체적 조건을 갖춘 소년소녀를 선발해 6년 과정의 체계적 훈련을 거쳐 곡예사로 만든다.

이들은 국제현대요술축제니, 국제교예축전이니 하는 세계 규모의 서커스대회에서 여러차례 최고상을 받았다.

우리나라의서커스는 쇠퇴기에 접어든지 오래다.

관객의 발길이 격감한 것도 문제려니와 대 (代) 를 이을 곡예사가 없다는 것도 문제다.

그래도 아직 서커스에 대한 향수 (鄕愁)에 젖어드는 사람이 적지 않아 재작년 서울시는 대표격인 동춘곡마단에 흥행지원을 하기도 했지만 붐을 일으키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동춘곡마단이 추진하는 올 9월 경주문화엑스포에서의 '남북 서커스 합동공연' 은 성사만 된다면 현대 서커스의 새로운 활로를 개척할는지도 모른다.

서커스도 하나의 '예 (藝)' 로 간주할 수 있다면 어떤 형태로든 맥을 잇게 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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