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아침]유치환 '행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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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 사랑한다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에메랄드빛 하늘이 환히 내다뵈는

우체국 창문 앞에 와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

- 유치환 '행복'

청마 (靑馬) 유치환 (柳致環.1908~1967) 의 의지 혹은 생의 구약성서적 경건성이 굳어지지 않은 것은 그에게 사랑하는 사람의 간절한 심경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의 시심 구석에는 이따금 연심 (戀心) 이 잘 지켜지고 있다.

이 세상의 사랑 대부분이 사랑받는 것에 기울어져 있을 때 거꾸로 사랑받기에 앞서 사랑하는 일의 정숙한 행복이란 얼마나 참다운가.

저 식민지시대 북만주와 내몽고를 떠돌던 한 시인에게는 우직한 침묵조차 시였다.

고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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