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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절과 실패를 모르는 사람은 훌륭한 리더 될 수 없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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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브스코리아불황이 길어지고 있다. 불황 극복의 견인차는 CEO들이다. 한국의 ‘간판’ 전문경영인인 윤종용(65) 전 삼성전자 부회장(상임고문·한국공학한림원 회장)을 만나 불황 극복의 해법과 CEO의 길을 물었다. ‘현역 화가 CEO’인 강석진 CEO컨설팅그룹 회장이 ‘화가들을 사랑한 CEO’ 윤 전 부회장과 만나 나눈 대담 ‘예술과 경영’도 함께 싣는다. 인터뷰와 대담은 4월 7일 서울 태평로빌딩 9층에 있는 윤 전 부회장의 방에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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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위기의식을 갖고 미래를 준비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필요한 것이 선견력·통찰력이죠. 앞을 내다보고 인재를 양성하고 기술을 개발해야 합니다.”

‘대한민국 대표 CEO’윤종용과의 대화 #SPECIAL TALK

윤종용 전 삼성전자 부회장은 불황기일수록 사람을 잘 써야 한다고 말했다. “미래는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변하는데 그에 대비할 자원은 사람과 기술밖에 없고, 기술을 혁신하는 것도 사람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역사의 발전은 도구의 발명과 과학기술의 혁신을 통해 이루어졌습니다. 그 도구를 만들어 내고 기술을 혁신하는 것도 사람이에요. 경영의 주체가 사람이듯이. 오늘 잘하지 못하면 내일이 없고, 미래도 없습니다. 오늘 잘하려면 모든 프로세스를 시스템화하고 모든 방법을 찾아내 혁신을 해야 합니다.”

내친 김에 혁신의 방법론을 물었다. “말 그대로 모든 방법을 동원하는 겁니다. 그러자면 CEO가 발 빠르게 움직여야 합니다. 그런데 혁신을 하면 반드시 희생이 따릅니다. 그 희생이 겁나 혁신을 못하는 경우도 많아요. 하지만 희생을 감내해야 합니다. 변화와 혁신은 무엇보다 과감해야 합니다. 하나 더, 문제와 답은 모두 현장에 있습니다. 현장 경영이 필요한 까닭이죠. 사무실에 앉아서 문제를 해결할 순 없습니다. 특히 위기일 땐 현장에 붙어살다시피 해야 합니다.”

윤종용 전 부회장은 서울대 전자공학과 졸업을 앞두고 있던 1966년 초 삼성그룹에 입사했다. 지난해 5월 삼성전자 대표이사 부회장 자리에서 물러날 때까지 18년여 동안 삼성 CEO를 지냈다. 80년대 말 잠시 삼성을 떠났지만 40여 년째 삼성에 근무하고 있는 대표적인 삼성맨이다.

지난해 8월 취업포털 인크루트는 4년제 대학 재학생 693명을 대상으로 ‘일하고 싶은 그룹사’를 조사했다. 이 조사에서 응답자 19%가 삼성그룹을 택했다. 2위인 금호아시아나와 9%포인트의 격차가 있었다. 취업 준비생들이 삼성그룹에서 가장 일하고 싶어 하는 회사는 어디일까?

인크루트가 지난해까지 실시한 ‘가장 일하고 싶은 기업’ 조사에서 삼성전자는 5년 연속 1위를 차지했다. 지난해 조사의 응답자는 4년제 대학 재학생 2205명, 후보 기업은 13개 업종 매출액 기준 10위권 업체 130개사였다. 그런 삼성에 40여 년 몸담고, 최고의 직장 삼성전자 CEO를 11년여 지낸 윤 전 부회장은 행운의 사나이라고 할 만하다.

더욱이 그는 삼성전자를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시켰다는 평가를 받는다. 비결이 뭘까? 정작 본인은 ‘윤종용 리더십’이라고 할 만한 건 없다고 손사래를 쳤다.

“운이 좋았습니다. 젊어서는 저도 참 많이 챙기고, 따지고 그랬어요. 내가 다 알고, 내가 다해야 한다고 생각했으니까. 직책이 높아지고 하는 일의 범위가 넓어지면서 그렇게 할 수가 없었습니다. 능력 있는 사람들을 키워서 맡기고 자율적으로 일하게 했죠. 그랬더니 훨씬 일을 잘하더라고요. 그래서 믿고 맡기게 됐습니다. 또 당사자의 이야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사실 제가 젊어서는 남의 이야기를 잘 안 듣는다고 소문이 났었습니다. CEO가 자기 시간을 많이 가지려면 믿고 맡겨야 합니다.”

한마디로 ‘위임의 리더십’을 발휘했다는 것이다. 그 역시 “아랫사람들에게 권한 이양(empowerment)을 많이 했다”고 털어놨다.
“사람을 키우는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당신이 책임지고 알아서 하라’고 맡기는 거예요. 그러자면 평소 그 사람이 하는 이야기를 많이 듣고 그 사람의 미래에 대해 생각해 봐야 합니다. 믿고 맡겨야 주인의식도 생깁니다.”

그는 많이 들어야 할뿐더러 많이 말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회사 방침 같은 것은 반복해서 지속적으로 이야기해야 합니다. 1대 1로 말하는 게 아니라 조직 전체를 대상으로 이야기할 때는 수십 번 반복해야 합니다. 필요한 것이라면 끊임없이 이야기해야 돼요. 그래야 사람들이 생각하고, 받아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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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전 부회장은 김재우 전 아주그룹 부회장(이노코 연구소장)과 경북사대부고 동기다. 두 사람은 삼성에 오랫동안 함께 몸담았다. 격월로 모이는 몇몇 고교 동기들의 부부 동반모임에서 요즘도 꾸준히 만난다.

김 전 부회장은 “윤 전 부회장은 기본적인 것, 근본에 관심이 많고 그런 것이 늘 그와의 대화에서 중심 화제가 된다”고 말했다. “정치적인 사건, 뇌물 스캔들이 터져도 가십성 이야기엔 별 관심이 없습니다.

윤 전 부회장은 70년대 후반에 삼성전자 도쿄지점장을 지냈는데 그때 짧은 기간에 일본의 뛰어난 점들을 습득했습니다. 일본을 겉핥기로 보고 온 사람들과 달랐죠. 이런 남다른 노력이 후발인 삼성전자가 소니를 넘어 청출어람에 이르는 바탕이 됐다고 봅니다.”

일본 제대로 배워 소니 추월

윤 전 부회장은 한국의 간판 전문경영인이다. 2004년 한국경영인협회는 그에게 ‘가장 존경받는 기업인상’을 수여했다. 이듬해 미국의 <포춘>은 그를 ‘아시아에서 가장 영향력 큰 기업인’ 1위에 올려놨다. CEO에게 필요한 자질이 무엇인지 물었다.

“선견력, 통찰력과 변화를 주도하는 힘이 있어야 합니다. 혁신을 하려면 적어도 변화를 따라잡을 수는 있어야죠. 신뢰, 국제 감각, 역사의식도 필요하고 숫자에 대해서도 민감해야 합니다. 선견력, 통찰력은 역사의식에서 나온다고도 할 수 있죠.”

그는 삼성전자 CEO 시절 직원 교육용으로 <초일류로 가는 생각>이라는 책을 썼다. 두 권으로 만들어진 이 책엔 각각 <역사와 미래>, <경영과 혁신>이라는 부제가 달려 있다. ‘CEO 윤종용’의 관심의 커버리지랄까, 지평을 보여주는 키워드인 셈이다. <경영과 혁신> 편에서 그는 경영자가 왜 숫자에 민감해야 하는지 이렇게 설명했다.

“기업 경영에서는 중요하든 중요하지 않든 항상 많은 계수들과 지표들이 작성, 배포, 보고된다. 경영자는 이 계수가 의미하는 바를 정확히 읽어낼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빠르고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고 올바른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다. … 경영자는 많은 계수들의 대소완급(大小緩急)을 구분하고 관리할 수 있어야 한다.”

63㎡(19.2평) 넓이의 태평로빌딩 그의 집무실은 한쪽 벽면이 책으로 덮여 있었다. 집무 책상 위에도 책이 눕혀진 채로 잔뜩 쌓여 있었다. , , <상식 밖의 경제학>, <세계는 평평하다>, <경제사>, <케임브리지 중국사>, <중국역사박물관> 시리즈,

<골프에서 길을 묻다>, <골프가 내 몸을 망친다>, , <북한의 선군외교> 등이 눈에 들어왔다. 서가 반대편엔 ‘격물치지(格物致知)’라고 쓴 휘호가 걸려 있었다. 책을 기준으로 하면 그의 관심사는 경영에서 경제, 역사, 북한, 골프, 클래식까지 걸쳐 있는 셈이다. 그는 “요즘은 산업사를 읽고 있다”고 말했다.

“부의 역사, 화폐 전쟁, 부의 탄생 그런 것들이죠. 그런데 급한 일은 바쁜 사람에게 시키랬다고, 절대적인 시간은 많아졌는데 시간이 나지 않습니다. 여기도 파킨슨의 법칙이 적용되는 것 같습니다.” 그는 CEO도 인문학적 소양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역사를 알아야 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분야를 불문하고 리더와 전문가는 역사의식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자면 두 가지 역사를 알아야 합니다. 하나는 전반적인 역사죠. 북한이 왜 장거리 로켓을 발사했는지, 그래서 앞으로 어떻게 될지 관심이 있어야 합니다. 미래는 과거의 역사, 현재 상황에 대한 인식이 있어야 내다볼 수 있죠. 또 하나, 자기가 종사하는 분야의 역사를 알아야 합니다. CEO라면 1415년 시작된 포르투갈의 대항해 시대, 그보다 앞선 명나라 영락제의 대항해도 알고, 두 항해의 목적이 서로 어떻게 다른지도 알아야 합니다. 1776년 산업혁명이 시작된 후 약 50년 주기로 산업이 변천한 것도 알아야죠. 이런 역사적 사건들을 알아야 하기 때문에 인문학이 중요합니다.”

윤종용 전 회장의 경영 노하우

위기의식을 갖고 미래를 준비하라 미래는 엄청난 속도로
변한다. 사람과 기술로 미래에 대비하라.
역사를 알아야 미래가 보인다 CEO는 인문학적 소양을 갖춰야 한다. 특히 역사의식이 있어야 한다.
아랫사람에게 권한을 위임하라 심성 바른 사람을 뽑아 능력 있는 사람으로 키운 후 믿고 맡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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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종용 전 부회장 방에 걸려 있는 휘호 ‘격물치지(格物致知)’. 윤 전 부회장은 “꿰뚫어볼 만큼 사물의 이치에 통달하면 비로소 지혜에 도달할 수 있다”고 해석했다. 이 휘호는 그가 환갑이 되던 해 이재용 삼성전자 전무가 선물한 것으로, 글씨를 잘 쓰는 삼성 출신 한 인사의 작품이라고 했다.

조인스 인물 정보 취미란에 그는 골프와 미술 작품 감상이라고 적었다. 건강 관리를 위해 그는 “피트니스에 다니고 주말이면 골프를 친다”고 했다.

80년대 중반 삼성전자 종합연구소장으로 있던 윤 전 부회장은 현대전자로 자리를 옮긴다. 이어서 네덜란드의 필립스전자 본사로 스카우트 된다. 이런 그를 그룹 회장에 취임한 이건희 전 삼성 회장이 다시 불러들인다. 그도 좌절을 겪어 봤을까?

“반세기 가까이 월급쟁이 하면서 그런 경험이 없겠습니까? 그럴 때면 묵묵히 인내했습니다. 절망하지 않고, 전화위복이 되겠거니 하면서 감사하는 마음으로 받아들였죠. 사실 좌절도 하고 실패도 해 봐야 훌륭한 리더가 될 수 있습니다.”

윤 전 부회장은 한국공학한림원 회장을 맡고 있다. 대표적인 이공계 CEO로서 그는 이공계 기피 현상을 어떻게 볼까? 일각에서는 이공계 위기론마저 제기하는 요즘이다.

“이공계 출신들이 한때 반도체 회사에 들어가고 싶어 했는데 요즘 이쪽은 3D 취급을 받을 만큼 인기가 없다고 하더군요. 공부하기도 힘들지만 워낙 변화가 빠른 탓도 있을 겁니다. 이공계는 석·박사 학위를 받아도 한 10년 지나면 공부한 게 낡은 지식이 돼 버립니다. 게다가 돈 벌기도 힘들죠. 반면 의대·한의대 쪽은 변화가 상대적으로 느리고, 편안하고 쉽게 돈을 벌 수 있습니다.

의대생 중에 안과·치과 의사 지망생이 많은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힘든 과는 피하는 거예요. 그런데 기왕에 세상에 태어났으면 열정을 갖고 도전해야죠. 그게 세상을 제대로 사는 길입니다. 더욱이 지금 의대·한의대에 가는 젊은이들은 나중에 일자리 잡기도 쉽지 않을 거예요.

과거엔 종합병원에 몇 년 근무하고 나와 개업을 했지만 요즘은 개업해도 운영이 어렵습니다. 영상 기술의 발달로 장비 값이 엄청나게 올랐기 때문이죠. 장비가 차이가 나는데 개인병원을 찾겠습니까? 의료 시장 개방도 국민들의 반대로 막혔잖아요. 이런 사정은 한의대도 마찬가지입니다. 한마디로 의대, 한의대를 나와도 전망이 불투명합니다.”

그는 의사·한의사의 초과 공급은 국가적으로 인력 정책의 실패라고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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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이들에게 중소기업 권하고 싶어

윤 전 부회장에게 청년 실업 문제에 대한 해법을 구했다. 그는 “청년 실업이 국가적으로 인력이 사장되는 문제를 낳았다”고 개탄했다. “젊은 세대에게 중소기업에 들어가라고 권하고 싶어요. 중소기업에 들어가 회사도 키우고 스스로도 성장하라는 겁니다. 중소기업 하는 분들에게도 회사를 성장시키려면 인재를 키우라고 합니다.

과거 작은 기업이던 삼성과 현대가 어떻게 컸습니까? 임직원들이 돈 벌려고 밤잠 안 자고 열심히 일했습니다. 중소기업이 대기업을 따라잡는 길은 인재 양성밖에 없어요. 사장보다 봉급을 더 주고라도 우수한 인재를 뽑아 키워야 합니다. 대우도 잘해 주고 근무 환경도 좋게 만들어야죠.”

그는 자신이 삼성전자에 입사했을 때 이 회사는 중소기업이었다고 회상했다. 겨울이면 화장실에 난방이 안 들어와 변기가 막혔고 휴지도 제대로 없었다고 했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지 1년이 넘었지만 진영 간 대립이 여전히 극심하다. 각종 사회적 갈등도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전직 대통령은 다시 검은 돈 거래에 연루된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우리 사회의 리더십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할까? 윤 전 부회장은 사회지배구조가 바로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좋은 사회가 되려면 사회지배구조가 바로 돼야 합니다. 사회를 구성하는 개체 및 조직의 가치관·윤리관·사고방식행동양식, 조직의 의사결정 구조 이런 것들이 투명하고 건전해야 합니다. 특히 행정·입법·사법 부문의 지배구조가 중요합니다.

작금에 여의도에서 벌어지는 일, 정경유착 같은 것도 사회지배구조의 문제로 환원해 볼 수 있죠. 부자간형제간에도 돈을 그냥 주는 일은 없어요. 먹이사슬이 형성돼 있는 겁니다. 정치판의 현실도 저는 지배구조의 문제로 봅니다.”

글 이필재 편집위원, 사진 김현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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