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옴부즈맨 칼럼]'빅딜'등 부적절한 용어 범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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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이른바 빅딜 (big deal) 이란 월가 (街) 의 큰손들 사이에서 쓰이기 시작한 말이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요즘 우리나라의 매스컴에서는 이 말이 마치 새정부의 경제정책을 상징하는 전문용어의 하나인 양 쓰이고 있는 형편이다.

심지어 일부 신문에서는 '빅딜' 을 '대규모 사업교환' 이라고까지 주석을 붙여 쓰고 있을 정도다.

물론 '빅딜' 이란 말은 영어의 말뜻 풀이대로 한다면 '큰 거래' 이기 때문에 '대규모 사업교환' 이라는 풀이가 터무니없다고 할 수 없을는지도 모른다.

더군다나 새정부가 '빅딜' 이란 말을 쓰는 취지가 이른바 재벌 또는 대기업의 구조조정을 뜻하는 것이라는 측면에서 그런 풀이는 당연하다고 할 수 있을 법도 하다.

하지만 월가에서 투기적인 요소가 가미된 낱말로서의 '빅딜' 이란 말이 갖는 참뜻과 우리의 경우가 그대로 들어맞는지의 여부는 좀더 따져봐야 할 일인 것 같다.

사실상 월가에서의 '빅딜' 은 그것이 비록 투기적인 요소를 지녔다고 할지라도 시장의 메커니즘을 반영하는 것에 다름아니다.

그런데 우리의 경우는 '빅딜' 이 '대규모 사업교환' 이라고 할진대 어디서 어디까지가 시장의 메커니즘을 반영하는 것인지 도무지 알 수 없는 판국이고, 이 점을 명확하게 밝히려는 노력이 매스컴측에선 뚜렷하게 보이지도 않는다.

누가 어떤 명분을 붙이든간에 거래가 시장에서 이루어지려면 시장의 원리 (原理)에 따라야 하는 법이다.

그렇지 못한 경우는 대개 시장 이외의 요인에 의해 농단되게 마련인 것이다.

그런데 이득을 올린다는 측면에서 본다면 위의 두 경우는 모두 공통요소를 지닌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성격면에서는 하늘과 땅만큼이나 차이가 있다고 아니할 수 없다.

왜냐하면 전자 (前者) 의 이득은 정상적인 것인데 반해 후자 (後者) 의 그것은 부패와 직.간접으로 연결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나라가 이른바 국제통화기금 (IMF) 위기로 몰린 까닭도 한마디로 말한다면 시장 이외의 요인이 시장을 지배했기 때문에 생긴 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따라서 우리가 이 위기를 극복하고 활로 (活路) 를 찾기 위해서는 철저하게 과거의 실패를 반성하고 시장주의 (市場主義) 를 신봉하고 관철하는 이외에는 없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매우 안타까운 것은 우리나라의 매스컴이 표면상으로는 시장의 원리를 말하고 자유민주원칙을 지지하면서도 걸핏하면 그와 어긋나는 글이나 주장을 하는 경우가 너무나 많다는 사실이다.

특히 권력의 변환기에 즈음해 지난날의 실패를 권력이 개입함으로써 고칠 수 있고, 또 고치도록 해야 한다는 강한 성향이 매스컴측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는 상황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러나 엄격히 말해 지난날의 실패는 권력의 실패지 시장의 실패가 아니며, 그것을 망각한 어떤 처방도 또다른 시행착오의 악순환을 거듭케 할 우려가 있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될 터이다.

이것은 물론 '빅딜' 로 불리는 '대규모 사업교환' 만을 지칭해 하는 말은 아니다.

'빅딜' 과 관련해 이미 일부 신문에서도 문제점을 지적한 바 있거니와 그것이 시장주의에 활기를 불어넣기 위한 유일무이한 처방인지의 여부에 대해서는 보다 다양하게, 그리고 다각적으로 다루어져야 할 것 같다.

한데 '빅딜' 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할 수 있을는지 모르겠으나 지난 80년의 군사정권하에서도 '산업구조조정' 이라는 이름아래 일부 대기업의 통폐합이 이루어진 바 있었다.

그 귀결 (歸結) 이 어떻게 되었는가는 구태여 설명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하지만 그와 같은 구조조정의 발상 (發想) 이 어디에서 비롯됐는가는 새삼스럽게 되새겨볼 필요가 있을 줄 안다.

그것은 흔히 관료적 발상이었다고 지적되기도 한다.

그러나 당시의 신문을 찾아보면 기업가적인 발상과 접근의 흔적이 두드러지게 드러나기도 한다.

이것은 결국 일부의 기업가란 대부분이 그런 것은 아닐지라도 시장파괴적이고 권력지향적인 성향을 지니고 있음을 웅변해 주는 셈이다.

어떤 의미에서든 미래에의 열쇠는 미래에 있지 않고 과거에 있다는 것을 특히 매스컴은 명심해야 할 줄 안다.

우리는 흔히 과거를 너무나 쉽게 잊고 과거에 관대하다고 일컬어지기도 하거니와 그것은 뒤집어 말해 과거의 교훈을 쉽게 잊는다는 것과 같은 뜻이다.

과거를 잊고 교훈을 되새기지 않는다면 거기에 밝은 미래가 보증되기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비단 '빅딜' 뿐만 아니라 최근에 신문에서 쓰고 있는 일부의 용어를 보면 그것이 바로 매스컴의 현주소이고 문제의 뿌리를 나타내는 한 가닥이 아닌가 여겨지기도 한다.

가령 일부 신문은 아예 '재벌 (財閥)' 이란 단어를 쓰지 않고 '대기업' 이란 말로 그것을 대치시켜 버렸는데 그것을 반드시 잘한 일이라고 할 수 있을는지는 의문이다.

대기업이란 두말할 것도 없이 중소기업에 대한 대칭 (對稱) 의 개념인데 대기업이 곧 재벌과 같은 뜻으로 쓰이는 것은 개념상으로 무리라고 아니 할 수 없다.

이런 개념상의 무리는 비단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정리해고' 보다 '고용조정' 이란 말을 쓰는 일부의 신문에서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포괄적인 의미의 '고용조정' 속에 물론 '정리해고' 가 들어갈 수 있겠지만 '정리해고' 가 곧 '고용조정' 과 같은 뜻일 수는 없는 일이다.

매스컴이 어떤 용어가 지니는 개념을 도외시하고 적당히 얼버무린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 아닐까.

이규행 〈본사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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