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들 하고 싶은 것 하면서 창의성 길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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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9면

“모두가 옳은 일만 하면 세상이 얼마나 지루할까요? 옳은 것보다 새롭고 흥미로운 것이 소중합니다. 적어도 예술의 세계에서는요.”

미국 캘리포니아 예술대(California Institute of the Arts)의 스티븐 라바인(61·사진) 총장의 말이다. 이 학교는 월트 디즈니가 1961년 미 서부 로스앤젤레스에 세웠으며, 캘아츠(CalArts)라는 애칭으로 알려져 있다. 영화·연극·애니메이션·음악·미술·비평의 6개 전공을 두고 있다. 올해 미국 아카데미상 애니메이션 부문의 후보들이 모두 이 학교 출신이어서 화제가 됐다.

88년부터 이 학교 총장을 맡고 있는 그는 재임 기간 중 입학생 수를 850명에서 1350명으로 늘렸고, 기부금도 2000만 달러에서 1억2000만 달러로 늘렸다.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 대선 캠프의 예술 정책팀에서 활동하기도 했다. 최근 한국에서 전시회를 개최한 부인 재닛 스턴버그를 응원하기 위해 방한한 그를 만났다. 다음은 일문일답.

-20년 넘게 총장을 맡고 있는데.

“미 대학 총장의 평균 재임기간이 5년 정도라는 통계가 있으니, 취임 20주년을 이미 넘긴 나는 최장수급이 아닌가 싶다. 학생·교수들과 내가 잘 맞는 덕이다. 우리 학생들은 자유롭고 실험정신이 강하다. 교수들도 마찬가지다. 학교에서 넥타이를 하고 다니는 사람은 나밖에 없을 정도다. 처음엔 적응하기가 쉽지 않았다. 파란 형광물질로 머리를 염색한 사람을 학교에서 처음 보고 놀랐다. 학생들이 작품에 몰두하다 수업에 늦는 게 예사다. 하지만 그들의 자유분방하고 창의적 분위기를 사랑한다. 그들을 지원하고 격려하는 게 나의 일이다.”

-캘아츠 교육의 핵심이 창의성이라는데,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나.

“학생들이 하고 싶은 것을 하도록 풀어준다. 독립적이고 실험적이며 즐거움을 추구한다고 해서 게으르고 규칙을 무시하며 조직에서 실패하는 사람인 것은 아니다. 오히려 창의적이고, 세상을 긍정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에너지를 가진 사람들이다. 학생 선발에서도 자신만의 아이디어가 있으면서 실험정신이 뛰어난 사람을 주로 뽑는다. 음악 전공 학생의 경우 바이올린을 주어진 곡의 정석대로 연주한 학생보다 창의적으로 자신의 색깔을 넣어 연주한 학생을 합격시킨다. 학교 안에선 각자 다른 전공의 학생들과의 접점을 많이 마련해준다. 여섯 개 전공분야의 학생들이 하나의 건물 안에서 공부하고 작품활동을 한다. 학제간의 교류도 자연스럽게 활발하다. 각각 음악과 무용을 전공하는 학생 커플은 함께 작품 활동을 하다가 새로운 컴퓨터 프로그램을 개발하기도 했다. 무용수의 움직임을 컴퓨터가 인식해 자동으로 음악 멜로디로 발전시키는 거다. 많은 프로 무용단이 이 프로그램을 사용하고 있는 걸로 안다.”

-학교 내 한국 학생들은 어떤가.

“해외에서 유학온 학생의 절반 정도가 한국 출신이다. 다들 훌륭하다. 한국에서 대학 교수나 현장 예술가로 활동하는 동문이 적지 않다. 한국 학생들은 입학 초기엔 상대적으로 조금 보수적으로 보이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놀라운 성장을 보인다.”

-예술에 대한 본인의 철학은.

“40대 초반에 발레 레슨을 몇 달 동안 받았다. 더 늦으면 어려울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난 예술의 모든 분야를 체험해보고 싶다. 예술이란 곧 ‘나는 왜 살아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기 때문이다. 예술이란 현대라는 시간을 읽어내고 표현하고 체험하는 일이다.”

글=전수진 기자, 사진 제공=김형수 연세대 교수(캘아츠 동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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