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어떤 정치인도 대통령을 대신할 수는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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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2면

4·29 재·보선 완패의 충격으로 한나라당이 몸살을 앓고 있다. 쇄신과 개혁의 목소리가 봇물 터지듯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고 있다. 박희태 대표가 오늘 아침 그 목소리를 이명박 대통령에게 전달한다. 집권세력의 두 리더가 만나 선거로 드러난 민심을 수렴하고 대책을 논의하는 자리다. 국정의 분수령이 될 수 있고, 쇄신과 개혁의 출발점이 될 수 있는 중대한 계기로 주목된다.

선거는 민심의 표출이다. 4·29 재·보선 결과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은 집권여당의 참패다. 한나라당 내부의 쇄신 요구는 당연하다. 그러나 쇄신의 방법을 두고는 갈래가 나뉜다. 개혁 성향 초선 의원 모임인 ‘민본21’이 가장 먼저, 가장 포괄적인 쇄신안을 내놓았다. 지난 4일 성명에서 청와대와 당지도부를 직접 겨냥해 비판했다. 선거 직후 청와대에서 ‘일부 지역선거의 결과’라며 재·보선 결과를 가볍게 받아들인 데 대해 ‘안이한 인식’이라 지적했다. 당 지도부의 미온적인 태도에 대해서도 ‘위기 불감증’이라고 지적했다.

이들이 제안한 쇄신책은 대부분 대통령에 대한 건의다. 대통령이 직접 여야 지도자들과 의사소통해 달라, 청와대 참모와 내각에 대한 인사 개편을 하면서 정파 초월한 인재를 기용해 달라, 일방통행식 당정협의를 실질적인 쌍방향 소통이 되도록 해달라 등. 표현은 완곡하지만 사실 대통령의 국정운영 방식에 일대 변화를 촉구한 셈이다.

4, 5일 이틀간 속초에서 워크숍을 한 비례대표 의원들도 ‘당의 변화와 당내 화합 필요성’에 뜻을 같이한 것으로 알려졌다. 과거 초선 개혁모임에 참여했던 재선 이상 의원 일부도 오늘 청와대 회동을 지켜본 다음 쇄신을 촉구하는 입장 발표를 할 계획이다. 3선 의원들도 모임을 가질 예정이다. 오늘 회동이 어떤 방식이든 쇄신의 요구를 수렴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그러나 이명박 대통령과 박희태 대표 등 집권당 지도부의 생각은 상당히 다른 것으로 알려졌다. 박 대표는 “재·보선 민심은 우리에게 쇄신과 단합을 하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민본21’과는 전혀 다른 방법론이다. 박 대표 본인이 쇄신과 개혁의 중심이 되겠다는 의미다. ‘민본21’이 요구하는 지도부 개편을 거부한 셈이다. 청와대도 ‘당지도부 개편작업이 오히려 국정혼란을 가중시킬 것’이란 생각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정운영 방식에 큰 변화를 주지 않는 대신 경제 살리기에 계속 전념하겠다는 뜻이라고 한다.

경제 살리기를 반대할 사람은 없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국정운영 방식을 바꾸라는 것이 선거에 나타난 민심이다. 대통령이 아무리 경제 살리기에 매달려도 국회에서 법안을 통과시켜주지 않으면 실효가 없다. 대통령이 그토록 강조했던 금산분리완화법이 한나라당 의원 절반 가까이가 반대·기권하는 바람에 무산되는 지경이다. 정치 없는 경제 살리기는 불가능하다. 대통령은 선거로 당선된 정치인이다. 어떤 정치인도 대통령을 대신할 수 없음은 지금까지 국정운영 과정에서 확인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