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클립] 언어가 힘이다 <9> 순우리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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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은 순우리말과 한자어로 구성돼 있다. 한자어가 60~70%를 차지한다. 한자어보다 오히려 순우리말의 비중이 낮다. 그나마 쓰이는 순우리말도 사용 빈도가 점점 줄어들고 있는 게 현실이다. 한자어도 이제 우리말의 일부분이므로 순우리말을 구분하는 것이 무의미할 수도 있다. 지금은 거의 쓰이지 않는 순우리말을 사용하는 것이 오히려 불편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순우리말에는 우리 민족의 문화와 정서가 배어 있다. 순우리말을 잃으면 다양하고 풍부한 표현력뿐 아니라 우리의 얼도 잃게 된다는 점에서 순우리말을 발굴하고 살려 쓰는 노력을 지속적으로 기울여야 한다. 다음 회부터는 일반인이 글을 쉽게 쓰는 요령을 다룬다.

배상복 기자

순우리말이란

순우리말이란 ‘미르(용)’ ‘가시버시(부부)’ 등과 같은 순수한 우리말, 즉 우리 민족 고유의 말을 일컫는다. 토박이말 또는 고유어라고도 한다. 한자어로 된 우리말과 구분하기 위한 개념이다.

한글이 만들어지기 이전에는 의사를 표현하는 말은 있으되 기록할 문자가 없었다. 중국에서 한자를 도입함으로써 비로소 기록이 가능해졌다. 신라·고려시대에는 한자의 음과 뜻을 빌려 우리말을 적는 향찰이나 이두를 사용했다.

한자 도입과 함께 한자 단어도 들어와 순우리말과 더불어 사용됐다. ‘미르’라는 순우리말에 한자어 ‘용(龍)’이 보태진 것이 이런 예다. 글로 표현할 때는 ‘용’이란 한자 어휘를 사용했으므로 ‘미르’라는 순우리말은 점점 밀려나게 됐다.

‘새재’가 ‘조령(鳥嶺)’이 되고 ‘달구벌’이 ‘대구(大邱)’가 됐듯 순우리말로 된 지명도 기록을 위해 대부분 한자어로 바뀌었다. 이런 식으로 토박이말이 한자어에 밀려남으로써 전체 우리말에서 순우리말이 차지하는 비중은 점점 낮아졌다.

한자 도입과 한자어 사용은 우리말 어휘를 풍부하게 하고 문화 수준을 높이는 긍정적 역할도 했다. 하지만 적지 않은 순우리말이 사라짐으로써 고유어보다 오히려 한자어가 많아지는 결과를 낳았다. 이렇게 된 데는 한자어를 숭상하고 고유어를 업신여기는 지배층의 잘못된 의식도 한몫했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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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한자어뿐 아니라 영어와 같은 외래어가 넘쳐 남으로써 순우리말은 점점 찾아보기 어렵게 됐다. 입말에서 멀어진 채 문학 작품에서나 볼 수 있는 고유어가 적지 않다.

언어도 생명체와 같아 생성·발달·소멸의 과정을 겪는다. 쓰지 않는 말은 사라지게 마련이다. 순우리말에는 우리의 문화와 정서, 의식이 배어 있다. 어떤 것에서는 조상의 지혜가 느껴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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