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시론 ③ 노무현 구속은 정치적 망신 주기일 뿐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41면

법적으로는 부인·아들·측근의 비리를 노 대통령이 알았는가가 핵심이다. 검찰은 노 전 대통령이 알고 있다고 보는 것이 ‘상식’이라고 주장하는 반면, 노 전 대통령 측은 그 혐의를 강하게 부인하며 물증 없이 혐의를 흘리는 검찰 수사에 반발하고 있다. 무엇이 진실인지는 법정에서 밝혀지겠지만, 지금까지 밝혀진 사실만으로도 노 전 대통령에게는 ‘정치적 사망선고’가 내려졌다.

향후 법적 절차에서 공방이 있겠지만, 이러한 정치적 결과를 바꿀 수는 없을 것이다. 기소 후 재판이 진행되는 기간 내내 노 전 대통령은 검찰·언론, 그리고 대중의 비판에 노출될 것이고, 판결이 날 때 즈음에는 정치·사회적으로 ‘거열형(車裂刑)’을 받은 상태가 되어 버릴 것이다. 최종적으로 그에게는 무죄판결이 내려진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현재 집권 세력이나 보수 진영은 이러한 노 전 대통령의 망신과 상처를 고대하고 즐기고 있을지 모르겠다. 노 전 대통령을 ‘육시(戮屍)’한 후 ‘효수(梟首)’까지 하고픈 욕망이 강렬할 것이다. 그러나 필자는 영화 ‘친구’의 대사를 빌려 말하고 싶다. “고마 해라. 많이 뭇다 아이가”라고.

노 전 대통령의 부패 혐의에 대한 수사는 엄정히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나 엄정함이 불필요한 과도함이나 가혹함이 되어서는 안 된다. 이에 필자는 몇 가지 제안을 하고 싶다.

먼저 검찰총장은 노 전 대통령에 대해 불구속기소의 결정을 내려야 한다. 현시점에서 구속을 해 새로운 증거가 나올 가능성이 작은 바, 굳이 구속해야 할 이유가 없다. 이는 인신구속 자제라는 형사소송법의 대원칙에도 부합한다. 과거 구속이 이루어진 전두환·노태우 두 전 대통령과는 혐의 내용도, ‘뇌물’ 액수도 현격히 차이가 있다. 이상의 점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수의를 입히고 포승줄로 묶어 법정에 출두시키는 것은 실체적 진실발견을 위해서라기보다는 정치적 망신 주기의 의미를 가질 뿐이다.

노 전 대통령은 재판의 진행과 별도로 국민에게 통절한 사과를 해야 한다. 그는 자신의 가족과 측근 문제로 한때나마 노무현이라는 이름과 동일시되었던 시대정신과 가치마저 하수구에 버려지는 현실에 대해 무거운 책임을 느껴야 한다. 조갑제씨는 “노무현은 진보가 보수에게 주는 선물”이라고 비아냥거리고 있지 않은가. 이제 노 전 대통령은 과거 ‘바보 노무현’의 모습으로 돌아가야 한다. 노동운동 지원을 위해 투옥도 불사하던 모습, 지역주의 정치 타파를 위해 희생을 감수하고 출마하던 모습은 아름다웠다. 권력도 영향력도 사라진 지금, 그가 낮은 곳에서 묵묵히 ‘바보’의 길을 걷길 기대한다.

노무현의 시대는 끝났다. 그의 일은 법적 절차에 맡겨 두자. 노 전 대통령이 어느 정도의 법적 책임을 질 것인지는 법률가들이 결론을 낼 것이다. 현 시기 정치인· 언론, 그리고 국민들이 노 전 대통령에 대한 ‘부관참시(剖棺斬屍)‘보다 더 많은 관심과 열정을 쏟아야 할 일은 따로 있다. 노 전 대통령 재판에 관심이 쏠려 경제위기, 자산· 소득·교육의 양극화, 남북관계의 경색 등의 문제가 잊힐까 걱정이다.

조국 서울대 교수·법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