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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생기려다 너무 평범해진 쏘렌토R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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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기자가 쏘렌토R 직접 타보니①에서 이어짐

뒷면은 커다란 후면 방향등이 압권이다. 방향등 크기가 엄청나게 커 시선을 확 끈다. 거기에 전체를 LED램프로 둘러싸 야간 주행 때 브레이크를 밟으면 뒤따르던 차량이 깜짝 놀랄 정도로 붉은 빛이 들어온다.

순간 구형 에쿠스의 팔뚝만한 전면 방향등이 기억난다. 한국인들은 보통 같고는 안 되는 모양이다. 엄청 크거나 엄청 번쩍거려야 한다는 것. 적어도 요즘 현대ㆍ기아차에서 나오는 신차를 보면 그렇다. 현대ㆍ기아차 국내상품담당자는 ‘국내 소비자들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번쩍이는 크롬 장식을 많이 쓰고 방향등은 크게 하는 것을 좋아한다는 결과에 따라 이런 의견을 반영한 것”이라고 말한다.

앞면에 포인트를 너무 줘서인지(네 개나 달린 듯한 헤드라이트처럼 보이는 커다란 안개등) 뒷면은 상대적으로 심심하다. 디자인적 요소는 방향등 이외에 별다른 선을 찾아 보기 어렵다.

“단순하게 디자인한다는 것은 어렵다. 하나라도 더 넣고 싶은 욕심이 생기기 때문이다”. 피터 슈라이어가 말하는 단순함의 아름다움이다. 뒷면은 너무 단순해서 심심하다. 조금은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해주면 어떨까. 무언가 궁금증을 자아내는 선들이 한 두 개만 있어도 좋겠다.

거의 직각으로 떨어지는 테일 게이트는 7인승을 의식해서인지 요즘 스타일과는 좀 다르다. QM5는 테일 게이트를 너무 경사지게 해 손해를 봤다고 하지만 최근 나오는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은 크로스오버에 가깝게 해 직각으로 떨어지는 라인은 찾아보기 어렵다.

테일 게이트 밑 범퍼는 검은색 메쉬 그릴로 투톤 컬러를 강조했다. 엉덩이가 너무 치켜 올라간 느낌이 난다. 차라리 싼타페처럼 말끔하게 보디 컬러로 단장했으면 어떨까 한다. 요건 선택할 수 있는 옵션으로 해 소비자의 입맛에 맞게 해주면 좋겠다.

깔끔해진 실내 마무리

실내는 외모에 비해 칭찬할 점이 더 많다. 현대ㆍ기아차의 신차를 보면 외관보다는 실내 인테리어에서 항상 더 큰 향상을 보인다.

지난해 나온 쏘울을 빼고는 말이다. 그렇다고 쏘렌토R의 마감재가 현대차 싼타페보다 좋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이런 점에서 기아차는 항상 현대차에 뒤진다. 현대차에서 비싼 돈을 내고 엔진을 사다 써야 할 뿐 아니라 판매대수가 적어 생산성도 떨어진다. 결국 원가절감은 마감재에 집중된다. 그게 항상 악순환하는 기아차 신차의 인테리어다.

스티어링 휠(운전대)은 세련된 디자인으로 바뀌었다. 약간은 라세티 프리미어의 핸들 느낌이 난다. 핸들에는 오디오 채널, 볼륨, 크루즈 콘트롤, 휴대전화 핸즈프리, 음성인식 등 다양한 버튼이 달려있다. 여기서 조심할 부분은 음성인식 버튼이다. 자주 누르면 혈압이 올라간다. 음성인식 내비게이션에 대해선 한마디 해야겠다. 제발 운전자의 목을 쉬게 하지 마라. 음성인식 내비를 쓰다가는 편한 운전은커녕 화가 나 사고를 유발할 수도 있을 정도다. 이날 시승에 동승했던 기아차 직원도 ‘어... 내비가 왜 못알아듣지...’ 몇 번씩 되내였다. 음성인식 기술은 좀처럼 진보하지 못한다. 자동차 배터리처럼 말이다. 지난번 포르테 시승때도 음성인식 내비는 형편없는 수준이었다.

세 개의 실린더 모양으로 만들어진 계기판은 푸른색 LED 조명으로 산뜻한 맛을 준다. 가장 맘에 드는 것은 센터 콘솔이다. 14인지 노트북을 넣을 수 있다는 기아차 상품담당자의 말을 처음엔 반신반의했지만 열어보곤 깜짝 놀랐다. SUV는 이런 큰 수납공간이 장점이다. 이런 큰 수납공간을 확보하게 된 이유는 변속기 뒤에 보통 놓여있는 컵홀더 위치를 다른 곳으로 옮겼기 때 문이다. 다른차라면 컵홀더가 있을 자리까지 센터 콘솔이 차지한다. 상대적으로 도어에 달린 대용량 페트병 수납공간은 엉성하다. 직선으로 편편하게 마감을 해 둥근 페트병이 들어가면 공간이 이상해지고 자꾸 뒤뚱 거린다.

2열 시트는 등받이가 좀 더 누울 수 있으면 좋겠다. 거의 사용하지 않는 3열은 사람이 타기 보다는 바닥처럼 평평하게 해 적재공간으로 사용하는 게 좋을 정도다.
실내 인테리어는 쏘렌토R이 싼타페에 비해 적어도 두 수는 위다. 3년 전 나온 싼타페의 실내는 깔끔하지만 세련된 맛이 이제 막 태어난 쏘렌토R에 비해 떨어진다. 싼타페는 8월께 마이너 체인지 모델이 나온다고 한다. 인테리어만큼은 확실한 현대차가 어떻게 바꿀지 궁금해진다.

시원하게 달려주는 R엔진, 하지만 무른 서스펜션

동력성능은 기존 모델보다 확실하게 개선됐다. 2.2L R엔진의 출력뿐 아니라 정숙성이 상당히 좋아졌다. 엔진과 차체를 붙이는 엔진 마운팅에 진보를 이룬 듯 하다. 시동을 걸어도 디젤의 진동을 거의 느끼지 못할 정도다.

최근 타본 국산 디젤 가운데 정숙성에서는 거의 최고 수준이다. 수입차에서는 아우디가 최근 내놓은 Q5를 타면 놀라움이 느껴진다. 디젤차의 상식을 깰 정도로 정숙성이 좋다. 진동은 라세티 프리미어나 르노삼성 QM5보다 좋다고 하기는 어려운 요소들이 있다. 전체적으로 힘은 넉넉하다. 200마력, 44.5 토크는 무리 없이 차체를 움직여준다. 최대 토크가 2000rpm에서 나와 초반 가속력이 좋은 게 특징이다. 시승차에는 성인 네 명이 탔다. 무게감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잘 나간다. 최고마력이 아니라 디젤의 특징인 강한 토크 덕분이다.그렇다고 ‘굉장하다’는 표현을 쓰기엔 모자라는 점이 있다.

시승 전 기아차 상품본부 관계자가 ‘너무 잘 나가니 질주 본능을 자제해 주세요’라고 했다. 하지만 그 정도로 질주 본능이 탁월하진 못하다. 단지 국산차로서는 기대치를 넘어선 성능을 보여줬다.

서스펜션은 싼타페와 큰 차이를 느끼지 못하겠다. 싼타페의 차체를 그대로 가져다 쓴 것이 서스펜션에서 확현히 드러난다. 전체적으로 물러 코너링에서는 쏠림 현상이 느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핸들링은 생각보다 좋다. 급격하게 차량을 몰아 붙이지 않으면 나름대로 운전의 재미를 느낄 수 있다. 커브에서도 차가 밀려 밖으로 빠지는 경우는 드물었다. 기본으로 장착된 차체자세제어장치(VDC)가 빗길 속에서 제 기능을 발휘한다. 아쉬운 점은 타이어 그립력이다. 급출발을 하면 어김없이 접지력을 잃고 노란색 VDC 경고등이 깜빡인다.
재밌는 코너링이 가능해진 이유는 차고가 낮아져서다. 미약하지만 싼타페보다 15mm정도 차체를 낮췄다.

승차감은 기존 쏘렌토보다 훨씬 부드럽다. 쏘렌토는 차체 바닥에 ‘Y’ 자형으로 된 강철 프레임을 사용해 아무래도 승차감이 딱딱했다. 속도방지턱을 넘기만 하면 차체가 울컥하기 일쑤였다. 하지만 험로에서나 급격한 코너링에선 강한 차체가 제 힘을 발휘했다. 그래서 각진 디자인에 강인함을 느낄 수 있었다. 어느 정도 오프로드도 가능했다. 쏘렌토R은 승용차를 만드는 방식인 모노코크다. 프레임 없이 철골 구조를 엮어 차체를 만든다. 당연히 승차감은 편안해졌다. 당연히 도심용 SUV다. 2003년 이후 SUV는 모노코크가 주류다. 투자비가 없어 프레임 방식에 의존할 수 밖에 없던 쌍용차가 몰락한 것은 바로 모노코크 차체가 없었던 게 한 이유다. 하반기 나올 C200은 그런 점에서 기대를 갖게 하는 차다. 쌍용차의 첫 모노코크 SUV이다.

브레이크 성능은 크게 밀리지도 그렇다고 마음먹은 대로 바로 서주지도 않는다. 독일차의 가장 큰 장점은 브레이킹이다. BMW가 핸들링으로 유명하지만 이런 핸들링을 가능하게 해주는 것은 브레이크다. 확실한 브레이크가 있어 자유로운 핸들링을 할 수 있다고 할까.

시속 120㎞까지 가속해 본다. 정숙성은 탁월하다. 방음재를 듬뿍 사용했나 보다. 쏘울 디젤을 타고 느꼈던 실망감이 떠오른다. 잔뜩 기대를 하고 탔던 쏘울 디젤은 내내 ‘가래 끓는 듯한 원시적 디젤음’과 생각을 뛰어넘는 진동으로 필자를 실망시켰다. 디자인만 좋으면 뭐하나. 소비자들이 원하는 것은 다른 데 있다. 디자인이 좋은 만큼 승차감이나 정숙성이 따라줘야 ‘베스트 셀링 카’가 될 수 있다. 국내 첫 박스카인 쏘울에 대한 기대만큼이나 실망이 컸다. 올 8월 이런 점을 개선해 새로운 쏘울이 나온다고 한다. 잔뜩 기대를 부풀리고 싶다.

사이드 미러에서 나오는 바람소리나 전체적인 외부 소음 차단은 좋은 편이다. 단지 뒷좌석에서 들리는 타이어 바닥 소음은 개선의 여지를 분명히 남겨뒀다. 약 100㎞를 달려 연비는 정확히 측정할 수 없어 아쉬웠다. 공인 연비는 14.1km/ℓ다.

경쟁차를 제압할 수 있을까.CR-V를 겨냥했다

쏘렌토R의 경쟁차는 국산차에선 싼타페와 윈스톰, QM5가 꼽힌다. 가장 타격을 받을 층은 싼타페 고객일 듯 하다. 싼타페도 8월 첨단기능을 보강해 내놓는다. 다음으로는 혼다의 CR-V와 폴크스바겐 티구안을 꼽을 수 있다. 현대ㆍ기아차는 지난 2년간 CR-V에 톡톡히 망신을 당했다. 관세와 각종 세금(다 합쳐 약 15%)에 20%에 달하는 임포터 및 딜러 마진을 합쳤는 데도 CR-V와 싼타페의 가격차는 불과 10% 이내였다. CR-V는 날개 돋힌 듯 팔리면서 싼타페를 KO로 몰고 갔다. 현대ㆍ기아차는 바짝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만약 엔화 환율이 100엔대 1000원 이하 수준이고 한일 FTA 체결로 관세마저 없어진다면 CR-V는 싼타페보다 쌀 수 있다. 그럴 경우 국내 소비자의 쏠림 현상을 생각해보라. ‘다이나믹 코리아’라는 말을 만들어 준 한국 소비자들은 새로운 트렌드에 무척 강하다.

더구나 현대차는 800여개의 판매점을, 혼다코리아는 불과 10개의 판매점을 두고 있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쏘렌토R은 이런 점에서 CR-V에 복수를 다짐하는 차다. 하지만 올 2월 CR-V의 가격이 10% 가까이 오르면서 승부는 이미 끝났다. 쏘렌토R에 CR-V는 비교할 수 없다. 마무리 소재를 제외하면 거의 모든 부분에서 쏘렌토R의 승리다.

잘 팔리는 데는 좋은 디자인과 성능보다 가격이 중요하다. 시승차에는 버튼시동 스마트키, 음성인식 내비게이션, 블루투스 핸즈프리, 타이어 공기압 경보 장치, 크루즈 컨트롤 등 다양한 첨단 편의사양이 갖춰져 있다. 문제는 가격이다. 3400만원이 넘어간다. 첨단 편의장치를 달지 않고 보급형으로 가장 많이 팔릴 차량도 3000만원 이상 줘야 한다. 비슷한 성능을 내는 QM5보다 600만원 이상 비싸다. 성능을 높여 가격을 비싸게 받는 전략인데 요즘 같은 불황에 3000만원대 국산차 구매층의 구매력이 궁금해진다.

제주=김태진 기자

◆쏘렌토R 옥에 티 3제

1.얼굴에 포인트가 없다.

한 마디로 너무 복잡하다. 인상적이라야 할 헤드라이트는 너무 많이 본 모양이다. 포르테와 뭐가 다른지... 더구나 안개등을 너무 크게 한데다 매쉬 그릴까지 넣어 헤드라이트가 네 개로 착각할 정도다. 기아차의 브랜드 아이덴티티인 ‘파워 투 서프라이즈’는 네 개의 헤드라이트(?)로 느껴지는 평범한 얼굴 모습에 포인트가 없어졌다. 강인함이 그립다.

피터 슈라이어 디자인 담당 부사장이 기아차에 합류한 이래 기아차의 앞모습은 ‘호랑이 얼굴’로 상징돼 왔다. 이번 쏘렌토R에 호랑이는 없다. BMW의 사람 신장 모양의 키드니 그릴이나 아우디의 싱글 프레임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 대중차에 디자인 아이덴티티를 너무 강조하다 보면 디자인 자유도가 떨어진다. 그러다 보면 쌍용차 액티언의 파격(?)으로 치닫거나 어디서 많이 본듯한 차가 될 수 있다. 복잡한 얼굴은 어딘가 성형수술을 해야 하지 않을까...

2.너무 밋밋하고 두꺼운 C필라

기존 쏘렌토의 당당한 모습은 거의 사라졌다. 대신 기아차가 현대차처럼 변해간다. ‘판매가 잘 된 차 치고 나쁜 디자인은 없다’는 크리스 뱅글 전 BMW 디자인총괄 사장의 명언이 있지만 한국 현실이 다르다. 현대ㆍ기아차가 시장의 80%를 점유한 상황에서 고객들은 선택의 자유가 거의 없다. 많아야 3,4개 차종을 놓고 선택해야 한다. 수입차로 가기엔 가격이 너무 높다. 그런 점에서 소비자들은 현대ㆍ기아차에 감사를 해야 할지, 아니면 관세와 각종 수입장벽을 탓해야 할지 고민스런 부분이다.

기존 쏘렌토에는 C필라에 작은 글라스를 넣어 산뜻한 맛을 줬다. 보다 유선형으로 바뀐 쏘렌토R은 전체적으로 무난한 디자인이다. 역시 강조할 포인트가 없다. 밋밋하고 두텁기만 한 C필라가 특히 그렇다. 여기에 거의 직각으로 떨어지는 테일 게이트는 90년대 포드 익스플로러를 연상하게 한다. QM5처럼 유럽 추세를 반영해 납짝하게 눌러버린 테일 게이트가 한국 소비자에게 외면을 받는 점이 쏘렌토R에 영향을 준 것인가. C필라와 테일 게이트는 잘 생겼던 쏘렌토의 유전자를 모두 까먹은 부분이다. 다른 자동차 마니아의 반응은 어떨지 궁금하다.

3.어디에 쓸까. 변속기 위에 달린 적재 박스

실내 인테리어의 재질감은 이제 더 이상 기아차에서 논의할 사항이 아니다. 기아차는 항상 현대차보다 원가에서 불리하다. 그러다보면 실내 소재이 떨어질 수 밖에 없다.목표 원가에 맞추기 위해서다. 쏘렌토R 역시 재질감은 싼타페보다 못하다.

오디오 판넬 밑에 이어진 소품 사물함은 두 단계로 나눠져 있다. 아랫쪽 칸은 유럽에서 유리를 깨고 실내에 놓인 귀중품을 털어 가는 도둑들이 많아 귀중품을 보이지 않게 넣어 놓도록 만든 함이다. 문제는 사용이 너무 어렵다. 특히 운전자에겐 거의 쓸모 없는 공간이 됐다. 손가락을 넣어 열쇠지갑이라도 꺼내려면 손가락 다치기 쉽상이다. 그냥 싼타페처럼 평범하게 만든 게 낫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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