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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진단 10대한국병]9.비대한 사교육비(1)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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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지난 96년 우리나라의 공교육비와 사교육비를 합한 총교육비는 국내총생산 (GDP) 의 11.8%였다.

이는 선진국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매우 높은 수준이며, 그중 51%가 사교육비라는 사실은 놀라운 일이다.

사교육의 과도한 팽창이 우리나라의 교육은 물론 사회전반에 무거운 부담을 주고 있는 것이다.

사교육 문제의 핵심은 무리한 규제보다 공교육과 사교육을 조화시켜 교육투자의 효율성을 높이고 교육기회를 공평하게 분배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대학입학 경쟁을 위한 소모적 교육수요를 억제하고 학교교육과 사교육 사이에 적절한 역할분담을 이뤄야 한다.

중요한 정책과제로는 대학의 특성화와 학생선발 방식 개선, 초.중등 학교교육의 내실화를 위한 교육투자 확대등이 있다.

사교육의 과도한 팽창은 '과외망국론' 이 나올 정도로 우리나라의 교육은 물론 사회전반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지난 96년 우리나라 공교육비는 GDP의 5.8%인 22조7천억원이었으며, 사교육비는 GDP의 6.0%인 23조4천억원으로 추정된다.

공교육비와 사교육비를 합한 총교육비는 GDP의 11.8%가 되는데, 이는 선진국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매우 높은 수준이다.

또한 총교육비의 51%가 사교육비이며 68.5%가 민간부담이라는 사실은 교육기회가 학생의 타고난 재능보다 학부모의 경제력 또는 지불능력에 의해 좌우되는 불공평성을 내포하고 있다.

사교육의 과도한 팽창으로 가계는 물론 국민경제도 큰 부담을 지고 있다.

또한 엄청난 규모의 교육비 지출이 이뤄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교육성과는 미미하며, 사교육의 과도한 팽창으로 인해 사교육과 공교육 사이에 부작용도 나타나고 있다.

모든 사교육이 나쁜 것은 물론 아니다.

실제로 사교육은 여러가지 동기에서 이뤄지고 있으며, 그중에는 불가피하거나 바람직한 것도 있다.

교육수요 증가의 가장 중요한 원인은 대학입시 경쟁이다.

우선 대학이 진학희망자를 다 수용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2003년이면 대학 정원과 진학희망자 숫자가 비슷해지기 때문에 이 문제는 저절로 해소될 것이다.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대학의 획일적 서열화다.

대학의 특성화가 이뤄지지 않고 좋은 대학은 모든 것이 좋다는 식의 획일적인 서열화가 고착되면 정원확대나 진학 희망자의 감소에도 불구하고 더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한 소모적 경쟁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대학입학 전형방식도 교육수요의 팽창에 한몫 하고 있다.

학생선발은 시험성적 외에도 학생생활기록부.추천서.과외활동.성장배경.개인의 소질과 관심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이뤄져야 한다.

그러나 대학은 입학전형에서 행정편의와 책임회피를 위해 전문가의 주관적 평가를 지양하고 시험성적을 중시해 왔다.

시험성적이 가장 중요한 기준이 되는 입학전형에서 시험은 칼날같은 변별력을 지녀야 한다.

그러나 대학이 획일적으로 서열화돼 있는 상황에서 상위 1~2%의 학생들이 지원하는 대학도 시험의 변별력에 의존할 수 있기 위해서는 시험이 어려워야 한다.

그 결과 학생들은 개성과 창의성을 버리고 교과서보다 참고서 중심의 주입식 교육을 통해 오로지 시험점수 높이기에 열중할 수밖에 없었다.

교육수요는 대학입시경쟁 외에 사회경제적인 이유로도 증가한다.

소득수준이 높아짐에 따라 교육수요가 다양해지고 교육의 질에 대한 국민의 기대수준도 높아진다.

학교교육만으로는 충족시키기 어려운 예.체능 교육수요가 늘어나는 것이 좋은 예다.

핵가족화와 여성의 사회적 진출도 교육수요를 증가시키는 중요한 요인이다.

전통적으로 가정에서 이뤄지던 교육을 이제는 시장이 담당해야 하는 것이다.

치열한 대학입시경쟁이나 사회경제적 원인으로 교육수요가 늘어난다 해서 반드시 사교육 열풍이 불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사교육은 교육수요자인 학생.학부모와 교육공급자 사이의 자발적 거래를 통해 이뤄지는 것이기 때문에 사교육이 확대되는 것은 늘어나는 교육수요를 학교가 잘 충족시키지 못하거나 학교교육보다 사교육이 수요를 더 잘 충족시키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이 두가지 원인이 동시에 작용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학교는 재원의 제약과 제도의 경직성으로 인해 다양한 교육수요에 탄력적으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학교교육이 교육수요를 더 잘 충족시킬 수 있도록 재원을 확충하고 제도의 신축성을 높여야 하지만 사교육이 학교교육을 보완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사교육은 학교교육을 보완하는 역할에서 벗어나 학교교육과 경쟁함으로써 교육투자의 효율성을 떨어뜨리는 경우가 있다.

학교교육의 질이 사교육에 비해 낮다면 교육수요가 사교육으로 몰리는 것은 당연하다.

실제로 학교교육은 교육투자의 빈곤으로 교육환경 면에서 사교육에 뒤지는 경우가 많다.

한 학급에 40~50명의 학생을 배정해 가르치는 학교보다 훨씬 더 효과적인 교육과정을 운영하는 학원도 있다.

그러나 사교육의 확대가 사교육의 질적 우수성 때문만은 아니다.

사교육은 불공정하거나 비생산적인 방법으로 경쟁하기도 한다.

학교교육의 부실은 교육투자의 빈곤 외에 정부의 과도한 규제에도 원인이 있다.

초.중.고등학교교육에 대한 규제는 국공립과 사립을 막론하고 전국의 학교에 획일적인 교육을 강요하고 있다.

반면 사교육은 교과과정의 다양성과 운영의 신축성을 통해 학생의 교육수요에 탄력적으로 대응할 수 있기 때문에 사교육이 번창할 공간은 넓다.

공교육이 부실화하고 사교육이 과도하게 팽창함에 따라 엄청난 사회적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

무엇보다 경제적 자원의 낭비가 극심하다.

지난해 과외교육에 직접 투입된 돈은 약 9조6천억원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소모적 입학경쟁을 위해 사교육에 쏟아붓는 경제적 자원은 과외교육비로 표현되는 금액보다 현저하게 많다.

사교육에 투입되는 학생과 학부모의 시간도 중요한 자원이다.

특히 암기위주의 과외공부 때문에 개성과 창의력을 개발할 수 있는 기회를 상실하게 되는 미래세대의 기회비용은 그 가치를 평가하기조차 어렵다.

사교육의 팽창과 공교육의 위축은 교육기회의 공평한 분배를 어렵게 한다.

교육은 사회적 신분상승의 가장 중요한 통로이기 때문에 교육기회의 공평한 분배는 사회의 역동성을 유지하고 불평등에 대한 불만을 완화해 사회통합을 강화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러나 공교육이 쇠퇴하고 사교육이 번창함에 따라 교육기회의 분배는 개인의 능력이나 관심보다 부모의 경제력에 좌우되는 경향이 높아진다.

실제로 지금과 같은 과외열풍 아래서 시골의 가난한 학생이 서울의 명문대학에 진학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이런 현상이 방치된다면 중.저소득 계층의 신분상승은 점점 더 어려워지게 될 것이다.

사교육이 공교육을 보완하기 보다 아예 대체하고 있는 것도 문제다.

특히 치열한 입시경쟁으로 중.고등학교 교육의 중심이 사교육으로 이동하고 학교교육은 공동화하고 있다.

예컨대 학교에서 공부할 것을 학원에서 가르치기 때문에 학교공부에 대한 관심이 낮아질 수 있다.

학교진도보다 학원진도가 더 빠른 경우에는 학교수업이 낭비되기도 한다.

극히 일부이긴 하지만 공교육이 오히려 사교육에 의존하는 기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대표집필 = 윤건영 연세대 경제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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