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굿바이 국책 산은” … 55년 만에 민간은행으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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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잘 입던 옷도 몸이 커지면 갈아입어야 하는 법이다. 금융도 그렇다. 55년 역사의 산업은행은 그래서 곧 바뀐다.

지난달 29일 심야, 관련 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서 산은 민영화가 확정된 것이다. D데이는 오는 9월 1일. 물론 산업은행이란 이름은 남는다. 그러나 성격은 판이하게 달라진다. 국민 세금으로 산업을 지원하는 정책금융 기능은 같은 시기에 출범하는 한국정책금융공사(KPBC)로 넘어간다. 대신 산은은 대우증권·산은자산운용·산은캐피탈과 함께 신설되는 산은지주회사의 자회사로 편입된다. 하는 일은 수신과 여신, 인수합병(M&A),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등 시중은행과 똑같다. 정부가 산은지주의 지분 100%를 지니지만 5년 내에 지분 매각을 시작해야 한다. 정권이 바뀌거나 시장 상황을 이유로 산은 민영화가 지연될 것을 우려해 국회에서 아예 시기를 못박은 것이다. 민유성 산업은행장은 “출범 후 1~2년 내에 지분 매각과 거래소 상장을 목표로 한다”고 말했다.

산은 민영화는 이명박 대통령의 공약이다. 산은을 민영화해 마련한 돈으로 중소기업을 지원한다는 게 골자다. 이런 발상의 이면에는 산은이 개발시대에 산업자금의 파이프 역할을 했지만, 이제는 효용이 떨어졌다는 생각이 자리잡고 있다. 김동환 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개발시대를 마감하고 산업이 고도화되고 있는 지금 산은의 모델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고 말했다. 싱가포르·독일·프랑스·일본 등도 산은과 유사한 성격의 개발은행을 민영화하고 있다.

산은이 설립된 것은 1954년. 일제 강점기의 조선식산은행이 모태다. 이게 해방 후 한국식산은행으로 바뀌면서 산은 설립 논의가 시작됐다. 한국전쟁으로 설립 작업이 미뤄지다 휴전협정이 진전되면서 53년 산은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이 과정에서 식산은행의 일반은행 업무는 조선저축은행(SC제일은행의 전신)에 넘어갔다.

해방 후 식산은행은 조선은행(현 한국은행)과 중앙은행 기능을 놓고 경합을 벌였지만 일제시대 발권 기능을 가지고 있던 조선은행에 밀렸다. 산은이 행장 대신 총재란 직함을 쓴 것도 당시의 경쟁심리 때문이었다고 한다. 산은이 본격적으로 힘을 발휘한 것은 박정희 정권의 고도성장 정책이 시작되면서부터다. 경제개발 5개년 계획에 따라 산은은 채권 발행, 외자 도입, 기금 관리 등을 통해 산업자금의 파이프 역할을 했다. 포스코·현대자동차 등 대기업의 탄생에도 산은의 역할이 컸다.

그러나 고도성장기를 지나 산업이 성숙단계에 들어서고, 민간 금융회사들이 덩치를 키워가면서 사정이 달라졌다. 시중은행들과 곳곳에서 맞부딪치게 된 것이다. 정책금융 기능이 약해진 산은이 M&A, PF, 회사채 인수 등 민간 영역으로 사업을 확대한 까닭이다.

지난해 말 국내 M&A 주선 시장에서 산은의 시장점유율은 70.8%에 달한다. 산은이 시장의 효율을 떨어뜨리고 민간 금융사의 영역을 침해한다는 불만이 커진 이유다. 현재 산은은 한국 최고의 대기업 그룹이나 다름없다. 외환위기로 기업들이 줄줄이 무너지자 대출을 주식으로 바꾸는 방법을 통해 지분을 획득했기 때문이다. 산은은 이미 40여 개 기업을 매각했으며, 대우조선해양·현대건설·하이닉스 등의 매각도 예정돼 있다.

반면 산은은 돈줄을 쥐고 있다 보니 추문에 연루되는 일도 적잖았다. 2003년 현대그룹의 대북 송금 사건이 터졌을 땐 산은이 현대 계열사에 5500억원을 불법 대출해 준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총재가 뇌물을 받아 기소된 적도 있었다.

또 국책은행인 까닭에 외풍이 심했다. 산은 총재 인사엔 정치적 입김이 많이 작용했다. 지금까지 산업은행 총재를 역임한 사람은 모두 29명. 평균 재임기간은 불과 1년8개월이다. 연임 또는 중임은 구용서(1~2대) 초대 총재 등 4명뿐이고, 3년 임기를 다 채운 사람도 손에 꼽힐 정도다. 김원기(15~17대)·김준성(18대)·정영의(23대)·이동호(24대)·이형구(25~26대)씨 등은 총재 역임 후 장관에 취임했다.  

김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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